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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의 동부그룹은 왜 벼랑에 몰렸나

이계원 기자 gwlee@businesspost.co.kr 2014-04-09 18: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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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의 동부그룹은 왜 벼랑에 몰렸나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지난 1월17일부터 이틀 간 경기 광주 곤지암 동부그룹 인재개발원에서 전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 임원 워크삽을 가졌다. <뉴시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벼랑 끝까지 몰렸다. 지난해 11월 3조 원을 마련하기 위한 자산 매각 자구안을 내놓았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이 자구안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숨통을 죄고 있다. 김 회장은 제값을 받기 위해 시간을 달라고 한다.

업계는 김 회장이 그나마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욕심을 버려야 할 시간이 왔다고 입을 모은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김 회장이 오너십에 너무 집착을 하며 매각을 주저하다가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나 STX그룹의 강덕수 회장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동부그룹은 LIG투자증권을 향해 ‘법적대응’을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LIG투자증권이 부채비율이 높은 5곳 가운데 동부그룹이 가장 위험하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몰락한 동양그룹 전철을 밟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는데 동부그룹은 사실이 아니라며 발끈했다.

그리고 한달 뒤에 동부그룹은 자구책을 내놓았다. 자구책을 내놓은 뒤 4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제2의 동양그룹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 계열의 한국신용평가는 “웅진그룹, STX그룹, 동양그룹은 단순히 수익성 악화나 재무구조 개선 지연으로 부도가 난 게 아니다”라며 “지배구조 문제와 무리한 사업확장 등의 요인이 그룹을 무너지게 한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의 동부그룹은 아직도 자산 순위로 재계 17위다. 김 회장은 얼마든지 벼랑 끝으로 몰리기 전에 그룹을 회생시킬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김 회장은 왜 그런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일까? 그룹의 지배구조를 지키면서 사업을 확대하려는 욕심이 커 그 기회를 보내버린 탓이다.

한쪽에서는 김 회장이 유동성 위기가 나올 때마다 과감한 구조조정 등 근본적인 수술을 하기보다는 계열사끼리 합병을 하거나 회사를 쪼개는 등의 방법으로 일단 위기를 모면하자는 모습이 누적돼 결국 동부그룹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고 지적한다.

◆ 김준기 ‘반도체 사업’에 자금을 붓고 또 붓고

김 회장은 동부그룹에 대한 애착이 심해 오너십이 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부그룹의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게 김 회장이 30년 동안 끌어온 반도체에 대한 집착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업계 분석들이 나왔지만 김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계열사까지 희생해가며 자금을 몰아넣었다.

김 회장이 처음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때는 1983년이다. 삼성전자와 시기가 같다. 당시 몽산토와 합작해 코실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국내 최초로 반도체재료인 웨이퍼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1997년 설립한 동부전자를 앞세워 메모리 D램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그런데 곧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그러자 메모리 사업을 접고 국내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던 비메모리 반도체로 방향을 틀었다. 측근들은 개념이 너무도 생소했던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을 적극 만류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동부가 망한다 하더라도 선구자 역할로 만족한다”며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해서 한국 반도체 산업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김 회장은 2002년 동부전자보다 50배나 큰 규모의 아남반도체를 인수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김 회장의 승부수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동부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렸다. IT업계 버블이 꺼지면서 반도체 불황이 찾아 왔기 때문이다.


동부하이텍은 1997년부터 단 한 해도 연속흑자를 내지 못했다. 2조4천억 원의 차입금이 쌓였고 매년 1천억 원이 넘는 이자에 시달려야 했다. 수렁에 빠진 동부하이텍을 구하기 위해 2007년 동부화재 주식의 70%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 김 회장은 그 뒤에도 계속 부채상환과 차입을 되풀이하며 동부하이텍을 지원했다.

그러던 중 김 회장은 2009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9천억 원의 대출금을 상환해야 할 상황을 맞이하다. 그러나 대출금을 갚기에 자금이 부족했다. 결국 산업은행과 동부하이텍의 자회사인 동부메탈을 매각하는 문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김 회장은 동부메탈의 가치를 8천억 원 정도로 봤다. 그러나 산업은행 측은 3천억 원 수준을 제시했다.

그러자 김 회장은 “죽어도 그 조건과 가격에 동부메탈을 팔 수 없다”고 맞섰다. 김 회장은 사재 3500억 원을 털어 동부하이텍이 보유하고 있던 동부메탈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동부하이텍에 자금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동부하이텍을 비롯해 동부하이텍 계열사 임직원들에게도 주식을 사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이런 과정을 거쳐 빚만 2조 원인 동부하이텍 살리기에 성공했지만 동부그룹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다른 계열사들이 함께 져야 할 짐들의 무게는 그만큼 더 늘어났다.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 자구안을 내놓을 때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을 매각하기로 했다. 30년 반도체 열정을 드디어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그런 판단을 조금 더 일찍 했다면 동부그룹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 김준기의 무거운 짐, 동부건설 부채비율 600%


2009년부터 동부하이텍 유동성 위기가 동부그룹 전체로 번졌다. 동부건설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동부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2009년 당시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됐다. 2010년부터 국내 부동산 경기가 크게 악화되고 건설업계 장기불황에 빠졌다. 동부건설은 지난해 11월 사옥을 3600억 원에 매각하고 임대건물로 자리를 옮겼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였다.

장기불황으로 동부건설은 3년 연속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했고 동부건설 부채는 갈수록 늘어갔다.
 
동부건설은 지난해 매출 1조9977억 원에 영업이익 1038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1781억원이었다.  그 전 해인 2012년 매출 2조4846억 원에 영업이익 726억 원이었다. 당기순손실은 39억 원이었다.  2011년에 비하면 매출도 약간 늘고 당기순손실도 많이 줄었지만, 2013년에는 상황이 다시 악화됐다.

동부건설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600% 수준에 이른다. 그 전해에는 374%였다. 동부건설이 올해 갚아야 할 회사채만 해도 3000억 원 안팎이다.  동부건설의 차입금 규모도 1조 원 가량으로 자본금의 6배가 넘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동부그룹의 부채비율(부채총액/자본총액)은 금융을 포함할 경우 498%에 이른다. 자금난으로 그룹이 해체된 STX그룹(267%)이나 해운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404%)보다 더 높다.

  김준기의 동부그룹은 왜 벼랑에 몰렸나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 동부대우전자 광주공장을 방문해 "글로벌화, 전문화,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세계적 종합전자회사를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뉴시스>

◆ 김준기의 동부대우전자, ‘종합전자회사’의 꿈 실현될까


김 회장의 반도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동부대우전자’로 넘어왔다. 김 회장은 동부대우전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위기상황에서 다시 한 번 사업확장이라는 베팅을 걸고 있다. 김 회장이 가뜩이나 불경기에 기존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없이 대우전자를 인수해 동부대우전자로 바꾼 데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전문가들도 많다.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동부대우전자를 2700억 원 정도에 인수했다. 인수 과정에서 사재 250억 원을 투입했다. 또 김 회장은 스스로 대표이사에 이름도 올렸다. 김 회장은 “대우전자가 매물로 나왔을 때 한국의 전자산업을 주도하는 종합전자회사가 더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인수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동부대우전자를 통해 2017년 매출 5조 원, 영업이익 3천억 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김 회장에게 동부대우전자는 반도체를 대신하는 꿈이다. 김 회장은 동부대우전자를 통해 ‘글로벌 종합전자회사’를 만들고자 한다. 냉장고, 세탁기로 한정됐던 제품 포트폴리오를 TV, 청소기 등으로 다각화하고 있다. 김 회장은 동부대우전자를 중심으로 가전과 로봇, LED 등의 사업 경쟁력도 올리려고 한다.

김 회장은 인수 3개월 만에 임직원들에게 ‘10% 임금 인상’이라는 파격적 사기진작책을 내놓았다. 업계에서도 보수적 기업 색깔이 강한 동부그룹이 임금을 크게 인상한 데 놀라워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불경기가 앞으로 3~4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한 것”이라며 “주력사업의 경쟁력을 보다 강화해 지속성장이 가능한 시업 체질을 굳건히 하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7월 광주공장을 방문해 “일본만 해도 종합전자회사가 많은데 한국에 두 개밖에 없다”며 “정말 좋은 제품과 혼신의 노력을 다한 제품을 만들어 한국의 전자산업을 주도하는 회사가 되어보자”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동부대우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2조 원이다. 올해부터 30조 원에 육박하는 전체 동부그룹 매출 중 7% 가량을 차지한다. 이는 지난해 동부하이텍 4천900억 원, 동부라이텍 884억 원 등 다른 전자계열사에 비교하면 매출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다.

김 회장은 삼성출신 CEO인 이재형 부회장에게 동부대우전자 대표이사 자리를 맡기고 있다. 김 회장은 검증된 인재라며 삼성 출신 경영인에 대한 신뢰가 유별나다는 말을 듣는다. 김 회장이 외부인재 수혈에 적극적일 때 전체 임원의 60%를 외부영입 인사가 차지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삼성 출신들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동부대우전자가 동부그룹에 한줄기 빛이 될 것인가. 아니면 추락하는 동부그룹에 설상가상이 될 것인가. 동부그룹에 대한 염려 속에서 이런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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