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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한 예의, 물러남에 대한 예우

강석운 기자 kang@businesspost.co.kr 2013-12-30 1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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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인정이라는 배구선수가 있다. 74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불혹이다. 12~13년 시즌에서는 현대캐피탈에서 뛰었다. 원포인트 블로커로 가끔 나왔다. 3초 정도 등장했다가 손만 한번 들어보고 교체되는 일이 많았다. 이 짧은 출전을 위해 몇 시간이고 블로킹 연습을 한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 한구석이 시려왔다.

  나이듦에 대한 예의, 물러남에 대한 예우  
▲ 후인정
후인정은 대만 출신 화교다. 아버지도 배구선수였는데, 국적 때문에 한국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 태극마크의 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아들한테 귀화를 권유했다고 한다. 1995년 그는 귀화를 했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 즈음에 그와 인터뷰를 했다. 미래에 대한 설렘과 새 나라를 선택한 안타까움이 엇갈렸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시대를 풍미했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눈이 시리게 푸르렀던 청춘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13~14년 시즌을 앞두고 그를 더이상 코트에서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FA 자격을 얻었으나 찾는 팀이 없어 은퇴를 고려한다는 뉴스를 봤다. 그런데 한국전력에서 그를 데려갔다. 이번 시즌에는 더자주 코트에서 그를 본다. 센터 자리에도 나오고 원포인트 블로커로도 출전한다. 너무나 반가웠다.

후인정에게 이번 시즌은 아마도 마지막이 될 공산이 크다. 그래도 밀려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그는 행복할 것이다. 한국전력이 후인정을 부른 까닭이 무엇이든 그 팀과 그 팀의 신영철 감독이 고맙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류택현이라는 투수가 있다. 71년생이니 불혹도 넘었다. 현역투수 가운데 최고령이다. 내년 시즌을 앞두고 그가 한강을 뛴다고 한다. 이제는 내년을 기약하기보다는 한 게임, 한 이닝만을 생각하고 공을 뿌릴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아시아 최다 등판이라는 대기록이 남아있다. 류택현과 같은 연도에 태어났으나 생일이 약간 빠른 최향남이 있다. 그는 기아에서 방출되고 갈 곳을 잃고 “찾아주는 곳이 없으면 은퇴해야죠” 하고 말한다. 그런 최향남에 비하면 류택현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류택현에게 기회를 준 LG 야구팀이 멋있게 보인다.

현역 최고령 야수는 송지만이다. 73년생이다. 얼마전 재계약을 했고 내년 시즌에도 여전히 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구단에서 계약서를 내놓았는데, 금액도 보지 않고 서명을 했다고 한다. 그저 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고마웠을 터이다. 구단 관계자가 “계약금액을 확인하지 않느냐”고 해, 그제야 확인했더니 1억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지난해 연봉이 8천만원이었는데, 은퇴하지 말라는 말도 고마운데 2천만원이나 인상해 줬다니 감격했을 것이다. 1억이라는 상징적 연봉으로 베테랑을 예우하는 넥센 야구팀과 이정석 구단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지만은 “구단에 감사하고 다른 선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한해가 간다. 우리는 또 나이를 한살 먹는다. 희망퇴직, 명예퇴직으로 40대, 50대에 직장에서 내몰리는 가장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여의도 증권가는 한차례 칼바람이 지나갔고,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등 위기에 몰린 회사들이 너나없이 구조조정을 하고 조기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더욱이 형편이 좋은 LG전자 LG디스플레이 같은 곳도 불황 선제 대응이라는 미명 아래 명예퇴직을 실시한다. 이제는 만성적인 일이라 뉴스도 되지 않는다.

장강의 앞물이 뒷물에 밀려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밀려남이 아니라 물러남이다. 물러나 서해라는 큰바다를 만드는 것이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사회가 정말 그립다. 그것이 나이듦에 대한 예의이고 물러남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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