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전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최선의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박 회장에게 최선의 상황은 낮은 가격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박 회장에게 최악의 상황은 높은 가격을 제시한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돼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데 엄청난 부담을 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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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금호산업 채권단이 본입찰 유찰을 결정하고 박 회장과 수의계약 협상을 벌이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박 회장은 일단 인수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놓는 데 성공했다.
29일 업계 관계자들은 박 회장이 금호산업 우선매수청구권을 토대로 치밀한 전략을 펼쳐 금호산업 입찰을 유찰로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박 회장은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워크아웃 이후 사재 3300억 원으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시한 금액으로 먼저 매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했다.
이 때문에 어차피 인수에 참여해도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할 것으로 보고 많은 재무적투자자와 전략적투자자들이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금호산업을 인수하려면 박 회장이 조달할 수 없는 높은 금액을 써내야 하는 탓에 금전적 부담도 크다.
박 회장이 순리를 내세우며 상도를 강조했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지난해부터 금호산업을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석상에서 계속 내비쳤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데다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금호산업을 인수하는 것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 때문에 다른 대기업들이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박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중우호협회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 한국프로골프협회장, 한국메세나협회 회장, 연세대학교 총동문회장 등을 지냈거나 지내면서 정재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회사들이 인수에 나서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금호산업은 박삼구 회장의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욕심을 부려 괜히 여러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발빠른 대응도 금호산업 판세를 유리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박 회장은 지난 2월 금호산업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 직전 제2롯데월드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만났다.
그뒤 신세계는 채권단에 금호산업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지 하루 만에 이를 철회했다. 롯데그룹이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발을 뺀 것이다.
당시 롯데그룹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금호산업 인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를 앞두고 10년 만에 그룹 부회장직을 부활시키면서까지 대관업무에 힘을 쏟았다.
박 회장은 그룹의 원로이자 최측근인 이원태 부회장과 김성산 부회장에게 각각 서울지역과 호남지역의 대관업무를 맡겼다.
금호산업 인수전을 앞두고 호남지역에서 금호산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던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