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과로사로 의심되는 의사들의 돌연사가 잇달았다.
의사들의 돌연사가 열악한 업무환경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유가족들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엄수된 고 윤 센터장 영결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11일 성명을 통해 “한국의 의료체계는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며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10일 “전공의법이 규정하는 ‘주 80시간 근무’는 일반 근로자의 법정 근로시간의 2배에 해당된다"며 “의료현장은 공장에 불 끄면 문 닫을 수 있는 근로현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의사들의 잇따른 죽음의 원인을 과로로 보고 병원 안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4일 사망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병원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차 검안에서 ‘관상경맥동화로 발생한 급성 심정지’라는 소견이 나와 누적된 과로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부검 결과 나온다.
1일에는 가천대학교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숨지기도 했다. 근무 일정표에 따르면 사망한 전공의는 36시간 연속 근무 가운데 24시간을 마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는 일주일을 휴일 없이 일한다 해도 하루에 11시간을 넘게 일해야 80시간 근로시간을 채울 수 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11일 “전공의 대부분은 늘 잠이 부족해 눈 밑이 검은 상태로 일한다”며 “응급의료센터 교수들은 밤낮 구분이 없어 자다가 연락을 받고 병원에 나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건통계 2018’에 따르면 한의사를 포함한 한국의 임상 의사는 인구 1천 명당 2.3명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적다. OECD 평균은 3.3명이다.
한국의 의대 졸업자 수도 인구 10만 명당 7.9명으로 OECD 평균 12.1명에 훨씬 못 미친다.
반면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1년 동안 17회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여기에 종합병원, 대학병원 급의 의료기관을 선호하는 국민 정서로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진료량이 더욱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도 윤 센터장의 과로사를 계기로 의료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10일 논평에서 “윤 센터장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응급의료체계의 재정비와 지원 등 총체적 점검과 대책마련의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은 응급의료체계 개선과 관련해 입법과 예산 편성 등 제도 마련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인숙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도 의사 출신으로 임상현장의 열악한 근무현실을 지적하며 보건의료체계의 전면적이고 대대적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의료체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윤 센터장의 타계를 ‘순직’으로 표현해 애도의 뜻을 보였다. 남인순 민주당 최고위원은 “응급의료체계의 실질적 개편을 위해 고인이 준비한 여러 안과 열정을 잊지 않고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