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회계법인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국내 회계법인 가운데 처음이다.
전국 사무금융서비스 노동조합 삼일회계법인지부는 15일 설립총회를 열어 노조 ‘에스유니온(S-Union)’을 출범하고 황병찬 초대 지부장을 뽑았다.
삼일회계법인 노조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관한 사안을 논의할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 빚어진 갈등을 계기로 설립됐다.
삼일회계법인은 7일부터 9일 치른 투표에서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는 데 실패했다. 절반이 넘는 수의 찬성을 받아야 당선되지만 출마자는 전체 표 가운데 46%인 1585표를 얻는 데 그쳤다.
노조는 “근로자 대표가 선출되지 못한 이유는 삼일회계법인이 회사 입장을 받아들일 인물을 후보로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황 지부장은 “회사가 근로자 대표 선거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회사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노동자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는 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재량근무제 문제도 노조 설립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재량근무제는 포괄임금제와 달리 노사가 합의한 근로 시간에 관해서만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회계법인의 회계사 임금은 시간 외 근로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다.
재량근무제가 도입되면 회계사들의 급여가 낮아질 수 있다. 감사 업무가 몰리는 1~3월과 7~8월에는 회계사들의 업무량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업무가 많아도 노사가 합의한 근로 시간은 달라지지 않으므로 시간 외 근로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것이다.
노조는 “재량근무제를 시행하면 그 뒤 사측이 대체 휴무나 급여를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총희 청년회계사회 회장은 “젊은 회계사들이 과중한 업무와 책임에 시달려 자본주의의 파수꾼 역할을 못 한다”며 “해마다 숙련된 회계사 1천 명이 회계법인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회계법인 노조가 설립돼 회계사들이 전문가로서 양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된 점이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가장 큰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은 1971년 설립된 뒤 48년 동안 노조 없이 경영해왔다. 8월 기준 회계사 1868명이 근무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