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시가격을 실거래가격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진척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확한 실거래가격 정보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시가격과 연관된 세금과 행정분야도 60여 곳이나 돼 인상에 따른 반발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폭등을 잡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실거래가격보다 지나치게 낮은 부동산 공시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공시가격은 정부에서 기준이 되는 건물과 토지의 적정가격을 매해 일괄 조사해 알리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부동산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보유세와 취득세 등의 세금을 매긴다.
이 때문에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다주택자와 고가 주택을 보유한 사람의 실제 세금 부담도 줄어들다. 결국 투기 수요를 부추겨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18일 공시가격 산정을 관리하는 한국감정원 국정감사에서 “엉터리 공시지가(토지의 공시가격)의 문제가 많다”며 “공시가격의 정확성과 투명성이 모두 빠졌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가 받은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에서 50억 원 이상에 팔린 단독주택 11곳의 공시가격을 합친 수치가 실거래가격의 38%에 머물렀다.
서울 강북의 1억 원대 단독주택은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95%에 이르는 반면 서울 강남의 60억 원대 단독주택은 시세 반영률 25%에 머무르는 사례가 있었다.
서울시도 최근 국토부에 공문을 보내 한국감정원에서 매기는 표준주택 공시가격을 실거래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여줄 것을 요청했다.
국토부 자문기구인 관행혁신위원회도 7월에 부동산 공시가격을 실거래가격의 9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장기 목표를 권고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관행혁신위원회의에서 권고한 내용을 놓고 “10월부터 진행되는 공시가격 조사에 2018년 집값 상승분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김학규 한국감정원장도 18일 국감에서 “과세의 형평을 실현하기 위해 공시가격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고가 주택을 중점적으로 관리하고 주택가격의 수준별로 균형을 확보하는 것에도 온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을 실거래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단독주택은 전국 396만 가구의 주택별 실거래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 공시가격의 현실화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기 어렵다. 토지나 고가 주택, 대형 건물 등은 실제로 거래된 사례 자체가 많지 않아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을 비교하기 힘들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부동산 보유세 등의 과세 기준인 동시에 건강보험료와 기초연금 등 행정분야 60여 곳의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도 공시가격 현실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정희 국토교통부 부동산평가과장은 최근 토론회에서 공시가격을 처음 도입했을 때의 반발을 예로 들면서 “정책 담당자로서 현실에 기반해 합리성을 따져야 한다”며 “부동산 공시가격의 오차를 줄일 뜻은 있지만 관련 사안을 일률적이고 획일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은권 자유한국당 의원도 보건복지부의 예측통계를 근거로 공시지가가 30% 오르면 기초연금을 받던 사람들 가운데 9만5161명이 탈락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의원은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연금을 받지 못하면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데 정부는 집값 안정에 매달려 공시지가 현실화만 말하고 있다”며 “공시지가의 현실화를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는 카드로만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연내에 부동산 공시가격의 개편안을 내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구체적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