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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전자가 제2의 애플이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얼마 전 삼성전자의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스마트폰사업 부진으로 2014년 3분기 영업이익이 4조 원 대로 떨어진 점을 놓고 한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애플과 세계시장을 양분한 스마트폰의 강자다. 최근 중국업체들의 거센 도전을 받으며 성장이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한 단계 아래에 있는 ‘2인자’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애플처럼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에서도 진정한 강자가 되겠다며 야심차게 추진한 콘텐츠사업을 대부분 철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애플페이를 선보이자 뒤늦게 모바일 전자결제서비스를 내놓는 등 여전히 애플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애플 따라하기 전략으로 삼성전자가 결코 제2의 애플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 삼성전자 생태계 조성 계획은 ‘빨간불’
삼성전자가 추진했던 콘텐츠사업은 대부분 종료를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4년 11월 전자책 서비스인 ‘삼성북스’와 동영상 서비스인 ‘삼성비디오’의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주요 콘텐츠 서비스 가운데 음악 서비스인 ‘삼성뮤직’만 남았다.
삼성전자가 2011년 출시한 모바일 메신저 ‘챗온’도 2015년 2월 서비스가 종료된다.
삼성전자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상황에 대응해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서비스 종료 이유를 밝혔다. 사업철수가 아니라 체질개선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독자 콘텐츠사업에서 점차 발을 빼고 있다고 평가한다. 2014년 12월 초 실시된 조직개편에서 콘텐츠사업 전담조직인 ‘미디어솔루션센터(MSC)’는 사실상 해체됐다. 2008년 설립 뒤 6년 만의 일이다.
삼성전자의 독자 모바일 운영체제(OS) 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는 첫 번째 모바일OS인 ‘바다’의 운영을 완전히 중단하고 이를 흡수통합한 ‘타이젠’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자들의 저조한 참여와 애플리케이션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여전히 구글 안드로이드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 삼성전자는 왜 소프트웨어에서 고전할까
삼성전자가 콘텐츠와 운영체제(OS) 사업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것은 스마트폰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사업 초기에 애플을 모방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 때문에 ‘카피 캣’이라는 오명과 함께 각종 소송에 시달려야 했지만 빠른 속도로 애플과 격차를 좁혀 스마트폰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 전략을 소프트웨어사업에도 그대로 가져왔다. 카카오톡 출시 뒤 챗온을 내놨고 한국판 ‘아이튠스 스토어’를 만들겠다며 음악과 동영상, 전자책 서비스를 연이어 출시했다.
하지만 선두업체를 따라가는 전략은 소프트웨어사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번 만들어놓기만 하면 되는 하드웨어와 달리 소프트웨어는 지속적 업데이트와 킬러 콘텐츠 개발이 필수적인데 삼성전자는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호 서울대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삼성전자는 플랫폼 등 소프트웨어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운용해 본 경험이 별로 없고 전략적 사고 역량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2015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바일 결제서비스에 대해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애플이 이미 ‘애플페이’를 통해 간편결제 시장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선점했기 때문에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가 없다면 또 다시 실패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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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
◆ ‘삼성식 조직문화’ 혁신 시급해져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사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 삼성전자의 조직문화가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는 오너나 최고경영자(CEO)가 결정하면 이를 일사불란하게 실행에 옮기는 군대식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이런 문화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 삼성전자가 세계적 하드웨어 전문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창의성과 유연함이 강조되는 소프트웨어사업의 경우 삼성식 조직문화가 도리어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됐다. 삼성전자에 영입된 외국인 인재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것도 이런 조직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놓기보다 조직의 결정을 충실히 따르는 일이 훨씬 많다”며 “창의성을 발휘하고 싶어도 상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복거일씨는 2014년 9월 삼성 수요사장단 강연에서 조직 비대화에 따른 관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복씨는 “조직이 커질수록 구성원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에만 몰두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삼성전자는 조직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7월부터 자율 출퇴근제를 확대 실시했고 여름철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기도 했다.
삼성그룹이 2014년 11월 창의성 면접을 추가하는 내용의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것도 창의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시도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4년 10월 열린 창립 45주년 기념식에서 “지속성장을 위해 퍼스트 무버(First-mover)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밸류 크리에이터(Value creato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부회장은 경영환경이 하드웨어에서 에코 시스템(생태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도전과 혁신, 창의성을 강조했다. 지금 같은 경직된 문화로 혁신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임직원들에게 체질변화를 주문한 것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삼성전자는 문제가 무엇인지, 해결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며 “그런데도 그 방향으로 변화하지 못하는 점이 삼성전자가 제2의 애플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근본적 이유”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