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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총수공백 반면교사, 삼성과 대한전선

이계원 기자 gwlee@businesspost.co.kr 2014-03-13 11: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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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지금 새로운 경영을 실험 중이다.

최태원 회장의 실형 확정에 따른 경영공백을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전문경영인 집단지도체제로 메우려고 한다. 과거 오너의 일시적 공백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구축한 사례는 많았다. 그러나 이번 SK그룹처럼 오너의 장기공백을 경험한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일시적 공백으로 단기 대응을 했다. 장기공백일 경우에도 오너 가문이 그 자리를 메워 ‘힘의 진공상태’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SK 총수공백 반면교사, 삼성과 대한전선  
▲ 지난해 '2013 SK수펙스 추구상 시상식'에 SK그룹 임원진들이 참석했다.

SK그룹과 유사한 사례를 찾자면 이건희 회장이 거의 2년 동안 퇴진한 삼성그룹을 꼽을 수 있다.

2007년 10월 삼성그룹의 전략기회실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이른바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법에 따라 조준웅 특검팀은 삼성 의혹들을 수사하고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등의 혐의로 이건희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회장은 기소 직후 2008년 4월 경영퇴진을 선언했다. 이 회장은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며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떠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삼성의 콘트롤타워인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는 등 경영쇄신안을 내놓았다. 전략기획실을 장악하고 있던 이학수 부회장은 삼성전자 고문으로, 김인주 사장은 삼성전자 상담역으로 각각 2선 퇴진했다.

삼성은 대신 사장단협의회를 꾸려 그룹을 경영하기로 했다. 대규모 투자와 사업조정, 브랜드 관리 등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을 사장단협의회에서 신속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사장단협의회 아래에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를 두고 업무를 조율할 업무지원실을 설치했다. 투자조정위원회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브랜드관리위원회는 이순동 사장이 각각 맡았다. 업무지원실은 김종중 전무가 맡았다.

사장단협의회가 삼성그룹을 이끄는 실질적 콘트롤타워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시 삼성은 계열사 CEO 중심의 독자경영을 기본으로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공조하는 수준이었다. 이 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나고 가급적 외부에 노출을 피했지만 최 회장처럼 격리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요 현안은 얼마든지 이 회장의 의중을 반영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이 물러난 뒤 1년 쯤 지나 삼성그룹 수뇌부 입에서 이 회장 복귀 필요성을 주장하는 말이 나왔다. 당시 삼성전자 최지성 사장은 “회사 경영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했고, 권오현 사장도 “삼성그룹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이 회장의 지혜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오너에 대한 충성심을 담은 말이기도 하지만, 사장단협의회의 한계를 털어놓는 발언이기도 하다.

사장단협의회 시절 주요 계열사는 물론 사장단협의회도 그룹 차원에서 수립해야 할 장기 비전, 대규모 투자 결정, 사업구조조정 등은 미뤘다. 오너가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봤던 것이다.

결국 삼성 사장단협의회는 이 회장의 경영복귀를 결의했다. 그 내용을 담은 건의문을 들고 이 회장을 찾아가 전달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지난 2010년 3월 이 회장은 마침내 일선에 복귀했다. 경영일선 퇴진 후 23개월 만이었다.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애초 설립 취지부터 다른 점을 강조한다. 오너 공백에 따라 급조된 조직이 아니라 1년 전부터 발족해 차근차근 경험을 쌓은 집단지도체제로 그룹 콘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는 것이다.


오너가 없는 상황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 같은 집단지도체제가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GE의 잭 웰치 CEO처럼 전임자에게 6년 동안 혹독하게 CEO 프로그램을 거치고 자리에 오른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국적 상황에서 자칫 오너 같은 1인 전문경영인에게 그룹을 맡길 경우 그룹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대한전선이다. 설원량 회장이 지난 2004년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숨지자 대한전선은 그 아들인 설윤석 부회장이 나이가 어린 점을 감안해 임종욱 회장을 최고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는 오너처럼 그룹을 경영했다. 그러나 임 회장 재직 6년 동안 대한전선은 거덜이 났다. 2010년 설윤석 부회장이 오너경영을 시작했지만 결국 지난해 말 경영권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의 과제는 분명하다. “오너 역할이 분명한 국내 그룹의 경영문화에서 과연 전문경영인들이 결단이 필요할 때 그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경우 SK그룹은 급격하게 위기로 몰리지 않을지언정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집단지도체제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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