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HBM4 수율을 끌어올리며, 올해 더욱 치열해진 HBM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 프로> |
[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독주 체제가 경쟁사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올해 2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최초로 양산 출하하면서, 올해부터 SK하이닉스의 HBM 점유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엔비디아와 오랜 신뢰로 맺어진 관계를 바탕으로 HBM4 수율(완성품 비율)을 끌어올리며 HBM 경쟁우위를 지키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 엔비디아 '베라 루빈',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HBM4 탑재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일 대만 타이베이 뮤직 센터에서 열린 'GTC 타이베이'에서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베라 루빈'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의 HBM4가 적용된다"며 "현재 베라 루빈은 완전히 생산 중"이라고 밝혔다.
황 CEO의 발언은 올해 2월 HBM4 양산 출하를 밝힌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도 엔비디아에 HBM4 공급을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GTC 타이페이'를 직접 찾아, AI 생태계 내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중앙처리장치(CPU)인 '베라' 36개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 72개로 구성된 '베라 루빈' 기본 모델에는 HBM4 12단 제품 8개가 탑재된다. 이전 세대인 '그레이스 블랙웰'보다 비서(에이전트)형 AI 처리 성능이 10배 높아진다고 엔디비아 측은 설명했다.
이날 황 CEO는 "베라 루빈을 위한 공급망은 이전 세대인 '그레이스 블랙웰' 대비 2배나 크다"며 공급량이 더 늘어날 것이라도 시사했다.
그레이스 블랙웰은 HBM3E(6세대)가 탑재됐는데, SK하이닉스가 70% 이상의 물량을 담당했고 마이크론은 20%대의 점유율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블랙웰 출시 초기 HBM3E 품질 인증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엔비디아 공급망에 뒤늦게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HBM4에서는 경쟁 양상이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가 2026년 2월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로부터 HBM4 품질 인증을 받고, 양산 출하에 성공하면서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4 호환성과 신뢰성 테스트에 시간이 걸리면서, 삼성전자보다 공급 시점이 다소 늦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올해 초 HBM4 재설계 등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결국 일정에 맞춰 엔비디아에 HBM4 공급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이번에는 HBM4을 3개 기업이 모두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
|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026년 6월1일(현지시각)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GTC 타이베이' 기조연설에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 SK하이닉스 곽노정, HBM4 안정적 양산으로 차별화 모색
특히 성능 측면에서 SK하이닉스의 HBM4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서 경쟁자의 도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HBM4 제조에 10나노급 5세대 D램 공정인 '1b'를 주력으로 활용해 11.7Gbps(초당 기가바이트)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6세대 D램 공정인 '1c'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최대 13Gbps까지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 삼성전자가 자체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한 베이스다이(로직다이)를 HBM4에 탑재한 것과 달리 SK하이닉스 TSMC의 12나노 로직다이를 적용했다.
HBM4에서 베이스다이는 메모리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도록 돕는 부품으로, 공정이 미세할수록 전력 효율과 데이터 처리 속도가 크게 향상된다.
이처럼 속도 경쟁에서 밀리면서, SK하이닉스가 올해 HBM 점유율을 경쟁사에 내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SK하이닉스의 HBM 매출 점유율이 2025년 59%에서 2026년에도 50%로 낮아지고,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25년 20%에서 28%로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HBM4E(7세대)가 상용화하는 2027년에는 격차가 더 좁혀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HBM4보다 20% 성능이 향상된 HBM4E 샘플을 세계 최초로 출하했다.
싱가포르 투자전문지 트레이딩키는 "삼성전자는 올해 2월 HBM4 양산에 앞장선 데 이어 HBM4E 샘플도 엔비디아에 가장 먼저 공급하며 SK하이닉스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선발주자의 이점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이는 메모리 산업 지형의 급격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곽노정 사장은 안정적 HBM4 양산 체제로 올해 HBM 시장 1위 자리를 사수하려고 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HBM4에 이미 HBM3E에서 완벽히 검증된 1b D램 공정을 활용함으로써, 양산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HBM4는 베이스다이 등 제조 방식이 완전히 바뀌는 만큼, 검증이 끝나지 않은 1c 공정을 활용한다면 수율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또 SK하이닉스는 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MR-MUF) 방식의 후공정(패키징)을 HBM3E에 이어 HBM4에서도 그대로 적용한다.
MR-MUF는 반도체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간 사이에 주입한 뒤 굳히는 공정으로, 생산 속도가 높고 불량률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HBM3E에서 SK하이닉스가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곽 사장은 올해 3월 SK하이닉스 주주총회에서 "그동안 축적해온 양산 경험과 기술력을 통해, 올해 인공지능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할 HBM4에서도 선도적 입지를 점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