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 기자 esdolsoi@businesspost.co.kr2018-03-02 15: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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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이 백복인 KT&G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면서 기업은행과 KT&G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기업은행은 주주 보호를 위한 자체적 판단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의 뜻에 따라 백 사장을 교체하기 위해 총대를 멘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기업은행 “KT&G 주주 보호를 위한 자체적 판단”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백 사장 연임 반대와 사외이사 2명 추천을 놓고 KT&G의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자체적 결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김도진 IBK기업은행장.
기업은행은 백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로 연임 절차상 문제와 CEO(최고경영자) 리스크 등 두 가지를 꼽고 있다.
KT&G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사장공모 절차를 단 4일 만에 끝냈다. 1월31일 사장 공모를 받겠다고 밝힌 뒤 이틀 동안만 공모서류를 받고 서류심사에 하루, 면접에 하루를 써 나흘 만에 백 사장을 단독으로 추천했다.
또 지원자격을 이전과 달리 KT&G 내부인사로만 한정하면서 제대로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기업은행은 보고 있다.
KT&G는 2011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를 인수할 때 분식회계를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는데 백 사장이 당시 전략기획본부장으로 해외사업을 맡았던 점도 문제로 꼽힌다.
백 사장이 이와 관련해 업무상 배임 및 분식회계,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만큼 앞으로 경영공백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백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근거로 꼽힌다.
민영진 KT&G 전 사장이 2013년 연임에 성공한 뒤 배임수재 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두 번째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2015년 7월 물러났던 모습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만큼 이에 발맞춰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경영에 적극 목소리를 내겠다는 첫 움직임이기도 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주주권 행사의 모범규준을 말한다.
◆정부의 뜻에 맞춘 새 인물의 자리 마련인가
다만 기업은행이 갑작스럽게 KT&G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스튜어드십코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기업은행 지분 51.8%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만큼 정부가 기업은행을 통해 기업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한다는 지적이다.
▲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사.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이 2월 말 KT&G측에 사장후보추천위원회 심사내용 및 절차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의혹은 더욱 거세졌다. 국민연금은 KT&G 지분 9.0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KT&G 노조는 “기업은행의 백 사장 연임 반대는 부당한 경영간섭”이라며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기업은행이 이사회를 장악하려 하는 것은 아직도 KT&G를 공기업으로 착각하고 정권의 전리품으로 삼으려는 시도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백 사장이 이미 박근혜 정권의 인물로 분류돼 백 사장 대신 내정된 인물이 있다는 소문도 KT&G 안팎에서 나돈다.
기업은행이 최근 문재인 정부와 ‘코드 맞추기’에 힘쓰고 있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5월 김세형 매일경제신문 논설고문에 이어 올해 2월 김정훈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 전문위원을 각각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는 전·현직 금융기관 임원과 교수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 시민단체로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 곳이다.
김 고문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 지속 통일준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했던 만큼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 2명 모두 문재인 정부와 연결고리가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스튜어드십코드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첫 행보가 경영권 행사가 아닌 사장과 사외이사 등 인사를 건드리는 모양새가 되면서 ‘관치’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적극 추진해온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놓고 의결권 범위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