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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리치오 디 마르코 구찌 CEO |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세번째로 큰 명품시장이다. 우리나라 고가 수입품시장은 11조5천억 원 가량으로 일본과 중국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규모가 크다.
하지만 일부 명품회사들의 위상은 예전같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구찌다. 구찌는 대중명품을 지향하면서도 아시아태평양지역 소비자들의 달라진 취향을 제 때 반영하지 못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명품시장이 분화하고 경기부진이 계속되면서 에르메스와 샤넬 등 고가 명품 브랜드 아래의 준명품 브랜드는 판매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명품 브랜드들은 여태껏 지켰던 자존심을 버리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물건을 팔고 지방으로 판매망을 넓히는 등 판매확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부진한 실적
구찌그룹코리아는 지난해 프리미엄 뱀부백 출시 등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실적은 나빠졌다.
구찌그룹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2425억 원을 기록했다. 2012년보다 5.2%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지난해 283억 원으로 전년보다 8.7% 줄었다.
페라가모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119억 원으로 전년보다 12% 늘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107억 원으로 44.3%나 하락했다. 페라가모코리아의 2011년 영업이익은 210억 원이었다. 2년만에 영업이익이 50%나 급락한 것이다.
버버리코리아도 지난해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280억 원, 210억 원으로 전년 상반기와 비교할 때 각각 5%, 63% 감소했다.
크리스챤 디올은 해마다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크리스챤 디올은 2010년 26억 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2011년 29억 원, 2012년 60억 원, 2013년 64억 원으로 3년 만에 적자폭이 146%나 확대됐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밀려나거나 아예 한국에서 철수하는 명품 브랜드도 있다.
페라가모는 지난 3월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을 재단장하는 과정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페라가모가 서울의 주요 백화점에서 밀려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영국 명품 가방 브랜드 '멀버리'도 지난 8월 롯데면세점 온라인 사이트와 오프라인 매장에서 모두 빠졌다. 멀버리는 신세계 센텀시티점에서도 올해 초 퇴점됐다.
스위스 명품 가죽제품 브랜드 ‘발리’는 지난해 한국시장에서 자진철수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기업 한섬이 1년만에 판권을 인수해 영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매장수는 13곳에서 2곳으로 줄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에르메스와 샤넬 등 초고가 브랜드를 제외한 명품 브랜드들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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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켈레 노르사 페라가모 CEO |
◆ 준명품은 왜 고전하나
명품 브랜드가 고전하는 것은 합리적 소비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백화점이나 단일매장에서 정가를 주고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기보다 온라인을 통해 해외직접구매, 아울렛 등을 통한 저가구매에 관심을 쏟고 있다.
온라인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해외직접구매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 10명 가운데 8명(81.4%)이 해외브랜드 제품에 대한 직접구매가 점점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3년 같은 조사에서 66.7%가 향후 해외직구의 증가를 예상한 것과 비교하면 해외직접구매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특히 20~30대 젊은층은 명품 대신에 더 저렴하고 개성있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송지혜 배인앤컴퍼니 파트너는 “한국의 명품시장은 중요한 전환기에 있다”며 “샤넬이나 에르메스 등 초고가 브랜드는 여전히 강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일부 명품업체들은 최신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층이 늘어나는 시장상황을 쫓아가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층들이 기존 명품보다 가격은 싸고, 일반 브랜드보다 개성있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또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중산층이 고가의 명품에 대한 소비를 줄이자 명품회사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최고급 명품 브랜드가 아닌 대중명품의 경우 중산층 고객 비중이 높다. 이런 명품들을 주로 준명품이라고 부른다. 준명품은 고가명품 아래 단계에 자리한다. 준명품들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김필수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득 기준으로 최하위층은 경기상황과 상관없이 명품을 구매하지 않고, 최상위층은 불황에도 일반인들이 소비하기 어려운 고가 명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중상위 소득계층은 불황에 소비를 줄이면서 준명품 구매도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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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찌는 올해 9월30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층에 카페를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오픈했다. <구찌코리아> |
◆ 자존심 버리는 명품 브랜드
명품업체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명품업체들은 최근 백화점과 면세점 판매만 고수하던 전략을 버렸다. 과거 명품 브랜드들은 온라인 유통이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기피했다.
페라가모와 디올, 코치 등은 한국지사 대표를 교체해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일부 브랜드들은 평소보다 시기를 앞당겨 시즌 오프 할인행사를 열고 판매촉진에 나섰다.
구찌는 지난 9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층에 카페를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열었다. 구찌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피렌체, 일본 도쿄에서 구찌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구찌는 카페운영을 통해 한국고객들에게도 구찌만의 럭셔리 철학과 장인정신을 전달하려고 한다.
구찌는 또 전통한지를 사용해 한국시장을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고 한다. 구찌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 있는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 하우스만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카페를 여는 것은 구찌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샤넬도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기 위해 이례적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했다.샤넬은 지난 10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가브리엘 샤넬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장소를 모아놓은 전시회를 열었다.
샤넬은 국내에서 영업을 개시한 지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단독매장도 열려고 한다. 샤넬은 세계 명품백화점의 건축과 인테리어를 담당해온 건축가 피터 마리노와 함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건물을 짓고 있다.
명품회사들은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과 동시에 온라인 사이트도 개설하고 있다.
페라가모는 최근 신세계의 통합 온라인쇼핑몰인 SSG닷컴에 공식 온라인 스토어를 열었다. SSG닷컴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지만 제품 공급이나 재고관리는 페라가모가 직접 맡는 ‘몰인몰’ 형태다. 구찌가 지난 7월 입점한 데 이어 두 번째다.
페라가모는 그동안 서울에 있는 백화점과 주요 면세점 위주로 매장을 내왔는데 이제는 전략을 바꿔 지방으로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들의 구매성향이 까다롭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명품업체들의 변화는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