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전 한국은행 부총재가 3일 차기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이 전 부총재를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이 내정자는 한국은행 업무에 누구보다도 밝으며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판단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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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 |
이 내정자는 청와대 발표 후 한국은행 소공별관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영광이지만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내정자는 역대 한은 총재 내정자로는 최초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2012년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른 것이다. 국회는 20일 안에 청문회를 열어 심사를 한 뒤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청문회를 통과하면 임명절차를 거쳐 2018년 3월까지 총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 ‘정통 한은맨’이자 ‘강단’있는 인물
박 대통령이 이 내정자를 기용한 배경에 대해 다양한 추측들이 나오지만 그가 ‘정통 한은맨’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한은 총재만큼은 논란을 피해가고자 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은 역사상 최초의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됐으리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차기 한은 총재로 내정된 이 내정자는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원주 대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펜실베니아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77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35년간 근무했다. 1990년 조사부 과장을 시작으로 2003년 조사국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주로 조사부에서 근무했다. 1993년엔 잠시 환율 관련 업무를 맡기도 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조사부 국제경제실장과 뉴욕사무소 수석조사역, 조사국 해외조사실 등에서 일하며 주로 국제금융 업무를 담당했다. 2007년 부총재보로 승진한 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부총재를 지냈다가 2013년 퇴임했다. 퇴임 후에는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했다.
이 내정자는 국내 통화정책 전문가로 불린다.
이 내정자는 2007년 통화신용정책담당 부총재보를 맡으면서 한은의 통화정책을 담당했다. 특히 2008년 터진 국제 금융위기 상황에서 한은이 금융시장에 대한 안정화 조치를 단행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008년 10월 5.25%였던 기준금리를 12월 3.00%까지 끌어내려 시장안정에 노력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이 내정자가 조용하고 빈틈없는 성격이지만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선 과감한 모습도 보인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 내정자의 전문성을 근거로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분위기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내정 소식에 “한 마디로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김중수 현 한국은행 총재가 외부 인사라는 점을 거론하며 “이젠 내부에서 (인사를) 발탁할만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 내정자에 대해 “통화정책에 능하면서도 한은의 국제통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이 내정자는 또한 중요한 일에 자기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내정자는 부총재 퇴임 당시 김중수 현 한은 총재에게 쓴 소리를 하며 물러났다. 그는 퇴임식 자리에서 “글로벌과 개혁의 흐름에 오랜 기간 힘들여 쌓아 온 과거의 평판이 외면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60년에 걸쳐 형성돼온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면서 혼돈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김중수 총재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이 내정자의 당시 발언은 김중수 총재의 급진적인 조직과 인사개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이 내정자가 정식으로 임명되면 한은 조직의 안정성이 제고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은 출신 연구원들도 이 전 부총재의 내정이 적절한 인사라고 반기는 분위기다. 한은 출신인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김중수 총재의 재임 동안 한은 조직이 많이 흔들렸는데 이 내정자가 조직을 잘 추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향후 통화정책 방향은?
이 내정자의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놓고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이 내정자의 성향이다. 그가 ‘비둘기파’인지 ‘매파’인지에 따라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통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는 긴축통화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 방지에 집중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반면 비둘기파는 경기부양을 중시하기 때문에 금리인하 등을 통해 성장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현재까진 이 내정자의 성향을 속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내정자도 자신의 성향을 묻는 질문에 “한 번 보시죠”라며 즉답을 피했다.
한은 출신의 한 연구원은 “이 내정자가 부총재 시절에는 총재의 의견에 따라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성향을 드러낼 수 없었다”며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한 관계자도 “이 내정자는 어느 한 쪽 성향에 치우친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인물이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