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3사가 철강기업의 후판가격 인상 움직임에 따라 수주를 늘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선주들이 선박 가격에 원재료 가격의 상승분이 반영되기 전에 발주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철강-조선, 후판가격 인상 두고 기싸움
2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기업이 조선사에 납품하는 후판가격을 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
|
|
▲ (왼쪽부터)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철강기업들은 후판의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1분기에 평균 톤당 85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이상 상승했다는 점을 들어 가격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3사는 수주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싼 가격에 후판을 사들일 경우 경영난이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조선사들이 선박건조에 들이는 제조원가 가운데 후판가격의 비중만 15%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사들은 후판가격의 움직임이 수익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격인상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버티고 있다.
철강기업들은 조선사들이 후판가격 인상에 반발하자 3월부터 가격을 올리려던 계획을 잠시 보류했다. 철광석 가격이 1분기 말에 10% 이상 급락하면서 가격을 인상하기 위한 명분이 사라진 점도 가격협상 보류에 영향을 줬다.
철강기업들은 지난해 철광석 가격이 톤당 최저 40달러대에서 최고 80달러대까지 치솟았지만 조선업황 부진에 따라 원재료 인상분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내세워 앞으로도 후판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조선사들은 가격인상을 최대한 저지하려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조선사들이 고객기업과 맺어온 관계 등을 고려해 일정 수준에서 가격을 인상하는 데 동의할 가능성도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박용 후판을 제조할 수 있는 기업이 몇개 없는 상황에서 철강기업과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격인상을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 수익성 악화냐, 수주 확대냐
후판가격이 인상될 경우 당장 조선사들은 수익성이 떨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선박가격이 2004년 이후 13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판가격 인상이 조선사에 악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글로벌 선주사들은 선박가격이 지난해부터 1년 동안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자 발주를 최대한 미뤄왔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새 선박을 사들이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인 것이다.
글로벌 발주처들은 최근 국내 조선사들이 후판가격 인상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이 원재료가격 상승을 이유로 선박가격을 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배제할 수 없다고 바라본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해외 선주들로부터 선박의 건조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후판가격이 인상되기 직전에 선박을 발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환경규제를 시작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점도 발주처들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는 선박의 황산화물 배출량을 현재 3.5%에서 0.5%까지 줄여야 한다는 배출량 규제조치를 2020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선박건조에 통상 2~3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선주들이 더 이상 발주를 늦추기는 쉽지 않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