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대우조선해양 지원방안을 놓고 KDB산업은행과 막판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국민 노후자금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기금운용원칙을 앞세워 실리와 명분을 챙겨 삼성물산 합병찬성으로 추락한 위상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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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면욱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
국민연금은 17일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적상태와 경영정상화 가능성 등을 살피고 재무적투자자로서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실익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결과 정부의 채무조정안을 수용하는 것이 기금수익을 높이는 데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대우조선해양의 자율적 채무조정안에 찬성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3월23일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지원방안 발표 이후 25일 만에 나온 최종 결정으로 사채권자 집회가 열리는 당일 새벽에서야 공식입장을 발표한 만큼 사실상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활용한 셈이다.
국민연금은 산업은행과 협상 내내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을 높여야한다는 기금운용원칙을 앞세워 정부와 국책은행의 우회적 압박에 굴하지 않으면서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이 14일 협의점을 찾았다고 밝히면서 타결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만기유예 회사채의 상환방식을 놓고 산업은행과 평행선을 달리며 쉽사리 정부안에 따르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우선상환권을 부여하고 출금이 제한되는 특별계좌(에스크로 계좌)를 통해 만기유예 회사채의 상환을 사실상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국민연금은 보장이 아닌 법적효력이 있는 보증이 필요하다며 팽팽히 맞섰다.
우선상환권과 특별계좌를 통한 상환이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를 전제로 하는 만큼 대우조선해양의 청산시에도 상환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법적장치를 요구한 셈이다.
최종협의는 결국 산업은행이 국민연금의 강경한 태도에 한발 더 물러나며 이뤄졌다.
산업은행은 16일 오전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에게 4가지 안이 담긴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상환을 위한 이행확약서’를 전달했다.
이행확약서에는 대우조선해양이 청산에 들어갔을 때 사채권자들이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1천억 원가량을 특별계좌에 즉시 넣어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정KPMG는 대우조선해양의 청산시 사채권자들의 회수율이 6.6%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는데 산업은행이 회사채와 기업어음(CP) 1조5500억 원의 청산가치인 1천억 원가량을 사실상 보증해준 것이다.
이행확약서에는 상환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상환 한달 전부터 갚아야 하는 만기유예 회사채의 원리금을 특별계좌에 옮겨 관리하고 신규투입자금 2조9천억 원의 미사용분을 회사채 상환에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내년부터 매년 대우조선해양의 실사를 벌여 상환능력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만기유예 회사채의 조기상환도 추진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동시에 산업은행법, 수출입은행법, 구조조정법 등 관련 법률상 무담보채권의 보증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연금은 16일 밤 투자위원회를 열고 산업은행의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회수가능한 회사채의 상환을 보장받으면서 제한된 시간과 법적 테두리 안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지원방안에 따를 명분과 실리를 최대한 확보한 셈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채권자들에게 최대한의 방안을 제시했다”며 “국민연금이 기금관리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은 협상과정에서 기금운용원칙을 앞세우는 동시에 대주주인 산업은행에게 대우조선해양의 회생의지를 보여달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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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전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신사옥 전경. |
산업은행이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에게 추가적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준 만큼 대우조선해양의 회생의지를 높였다고도 볼 수 있다.
금융당국, 국책은행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보이며 세계 3대기금에 걸맞은 위상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준으로 550조 원을 굴리는 국내 최대, 세계 3대 기금이지만 삼성물산의 합병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으로 찬성표를 던져 문형표 전 이사장이 구속기소 되고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불구속기소 되는 등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정부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국민연금이 투자결정을 할 때는 기금운용본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내부 투자위원회의 결정을 따른다. 국민연금의 위상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셈이다.
강면욱 본부장은 17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불충분한 시간과 자료 탓에 더 힘든 선택이었다”며 “책임회피를 위해 결정을 미룬 것이 아니라 한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17일 투자위원회 결과를 발표하며 “앞으로도 기금운용원칙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