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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의 뒤집어보기] 한국통신이 민영화돼도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려면 30년 이상 걸린다고 하더니

김재섭 선임기자 jskim28@businesspost.co.kr 2025-11-04 15: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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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2002년 어느 날, 서울 광화문 한정식집.

그 날은 제2 시내전화 사업자(하나로통신, 하나로텔레콤을 거쳐 지금은 SK브로드밴드) 허가 신청서 접수 마감일이었다. 애초 접수 마감 시간은 오후 5시였는데, 그 시간까지 신청서가 접수되지 않자 정보통신부(지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업무 시간을 준용하겠자며 6시까지로 연장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한국통신이 민영화돼도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려면 30년 이상 걸린다고 하더니
▲ KT 차기 CEO 선임 장이 선 가운데, 민간 기업 KT CEO를 선임하는 것인지, 공공기관의 장을 선임하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꺼리 취재를 마치고 늦은 시간 기자실(당시는 정보통신부가 광화문 세안빌딩에 위치)로 복귀해 퇴근 준비를 하는데 윗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늦은 시간에 웬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호기심에 윗층으로 올라가 소리가 나는 대강당 문을 밀자, 그 안에 있던 수십명이 동시에 '얼음 땡'이 됐다.

모두의 얼굴에는 '앗 기자한테 들켰다'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 나는 '아 한 건 잡았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중에 추가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사업 허가 신청서 인쇄 때까지 주주로 참여하기로 한 각 기업별 지분율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가안을 담아 인쇄해 접수한 뒤, 이후 합의된 대로 지분율 숫자를 수정하고 인감 도장을 찍는 작업을 하던 중에 내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이후 나는 하나로통신을 '불법 상태로 탄생한 사업자'라고 낙인 찍어 놀렸다.

어찌됐건, 그 자리에 있던 당시 통신정책국장과 주주 참여업체 임원 등이 달려와 내 양 팔을 붙잡고 강당 밖으로 밀어냈다. 결국은 세종로 길 건너편에 있는 한정식집까지 끌려갔다.

식사 중 당시 한국전력 통신사업(당시 한국전력은 전력망과 병행해 구축한 통신망을 통신사에 임대해주는 사업 진행)을 총괄하던 김정부 전무가 불쑥 "한국통신이 민간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앞으로 3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화제를 돌렸다.

한국통신(당시는 '한국전기통신공사', 지금은 'KT')은 그 해 5월 기준으로 정부 보유 지분 전량 매각 절차가 끝나, 8월20일 완전 민영화 선언을 앞두고 있었다.

'민영화 절차가 마무리돼 곧 민간 기업으로 변신하는데 그 무슨 악담이냐'고 묻자 "내가 장담한다. 두고 보라"고 못박기까지 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 지분 전량 매각에 따라 한국통신이 지배구조 상으로는 민간 기업으로 변신하지만, 한국통신에서 정부기관(1982년 정보통신부서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분리) 및 공기업 물이 빠지고 기업문화가 민간 기업처럼 바뀌려면 30년 이상 걸린단다.

그는 "한 30년 동안은 정치권과 정부는 물론이고 가입자들도 한국통신을 민간 기업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경영상 필요로 어떤 일을 벌여야 하는데 반대 여론이 있다고 치자. 진정한 민간 기업은 정부 주무 부처와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언론 플레이를 해서라도 관철하려고 한다. 한국통신은 어떨까. 정보통신부(지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 청와대(지금은 용산) 쪽에서 '꼭 해야 되겠어?'라는 물어보는 순간 바로 꼬리를 내릴 거다. 아니 물어보기도 전에 눈치를 살필 가능성이 크다."

얼마 뒤 저녁 늦은 시간(오후 9시쯤), 퇴근 뒤 귀가해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당시 한국통신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를 보내줄테니 와서 술 한잔 같이 하잔다. 

"김 기자! 오늘 임원 승진자 명단을 최종 확정했는데, 9명 승진자 가운데 내 몫은 3명 밖에 안돼. 나머지 6명은 이미 낙점돼 있더라고. 내가 이 회사 최고경영자 맞아?"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 쏴부치고 싶었지만, 이미 취기가 있는 상태여서 밖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민영화됐지만 민간 기업이 아닌 한국통신의 모습을 엿봤다. 

한국통신 민영화 뒤 올해로 23년이 흘렀다.

한국통신은 민간 기업으로 거듭났을까.

회사 이름은 'KT'로 바뀌었다. 민간 기업처럼 영문 이름을 쓰고 있다.

다른 부분은?

때마침 KT에선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를 선임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4일 오후 2시 KT 이사회가 열렸다. 김영섭 사장이 연임 도전 여부에 대한 입장을 내보이고, 차기 CEO 후보 선임 일정과 방식이 논의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논의 내용은 오는 7일로 예정된 KT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투자자 쪽의 질의에 답하는 형식으로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

이와 별도로 김영섭 사장의 그동안 발언을 종합하면, KT 이사추천위원회가 곧 출범한다.

KT 차기 CEO 후보 선임 절차는 사외이사들로 이사추천위원회가 꾸려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사추천위원회가 공모와 추천 등을 통해 후보 도전을 받고, 서류 검토와 면접·프리젠테이션 등을 통해 숏 리스트(3~5명)를 추린다. 이어 이사회 차원에서 다시 심층 면접과 추가 프리젠테이션 등을 거쳐 최종 후보를 선정해 이사 선임 안건 형태로 주총에 추천한다.

이사 후보가 내년 3월 열리는 정기주총에서 승인되면, 이사회가 곧바로 해당 이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한다.

KT 안팎에선 벌써부터 하마평이 무성하다. KT 전현직 임원들과 전직 관료 출신들을 포함해 수십명이 도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는 공개적으로 도전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런데 도전자들 행태를 보면, 민간 기업 KT의 차기 CEO 후보를 선임하는 것인지, 공기업 사장 내지 공공기관장 후보를 선정하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KT CEO로서의 자질이나 능력보다 유력 정치인 내지 정부 주요 인사들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가 먼저 거론된다. 일부 도전자들은 겉으로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물밑으로는 자신이 유력 정치인 누구의 학교 동창이고 누구의 인척이라는 점을 은근히 퍼뜨린다.

이게 먹힌다고 보는 것이다. KT 민영화 이후 CEO가 어떻게 선임돼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충 다음과 같다. 혹시 도전자 개인에게 불이익이 될까 싶어 익명을 쓴다.

ㄱ아무개는 이재명 측근 장관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부총리 겸 장관과 고등학교 동문이다.

ㄴ아무개는 유력 국회의원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ㄷ아무개는 호남 지역 유력 정치인이 밀고 있다. 역대 KT CEO 중 호남 출신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ㄹ아무개는 여당의 지지를 받고 있다.

ㅁ아무개는 이전 민주당 정권 시절 장관을 지냈다.

ㅂ아무개는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이다.

ㅅ아무개는 전 KT CEO가 밀고 있다.

ㅇ아무개는 전직 회장 측근 누구 누구가 밀고 있다.

ㅈ아무개는 대형 법무법인이 KT 차기 CEO 후보로 밀고 있다.

KT 안팎에서 하마평에 오르는 KT 차기 CEO 도전자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들이다.

차기 공기업 사장 내지 공공기관장의 유력 후보를 지칭할 대 사용하는 말과 상당 부분 겹친다.

'아무개는 KT에서 어떤 보직을 수행해온 통신 전문가이고, 그가 CEO로 선임되면 KT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 것' 식의 얘기는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는다.

'낙하산' 논란에 휩싸일 것을 우려해선지 겉으로는 유력 정치인과 정부 주요 인사들과의 '인연'에 대해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거론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위에 이를 퍼뜨리고, 직접 찾아가 '유력 정치인 누구가 나를 밀고 있다. 나를 선택해 달라'고 요청하는 행보에 나서기도 한다.

차기 KT CEO 도전 의사를 밝힌 KT 전직 고위 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주위 권유로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한 유력 정치인 몇몇을 찾아갔더니, 한결같이 이미 한 30여명이 다녀갔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왕 도전 의사를 밝히고 뛰고 있으니 경쟁자들 움직임도 파악하고 있는데, 상당수 도전자들이 이재명 대통령 측근 중 측근으로 거론되는 성남 라인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엄청 애쓰고 있다고 한다. 특히 관직에 가지 않은 인사들을 만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모습은 KT 민영화 이후 CEO 선임 때마다 반복됐다. 이후 선임된 KT CEO 후보는 어김없이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이석채·황창규 회장은 물론 김영섭 사장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낙하산은 보은을 동반한다.

이석채 회장 시절을 두고는 "김영상 정부 인사들이 '빨대'를 꽂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김영섭 사장 취임 뒤에는 "윤석열 정부가 KT를 이명박 정부 인사들에게 던져준 것 같다"는 뒷말이 많았다.

이석채 회장 시절 그를 보좌하던 KT 전직 임원은 퇴직 뒤 기자와 만나 "회장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한국통신이 민영화돼도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려면 30년 이상 걸린다고 하더니
▲ KT 김영섭 사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대표 통신사 KT 경영이 통신 문외한 손에 맡겨진다는 점이다.

김영섭 사장은 지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이 질의를 받는 과정에서 "나는 통신을 모른다"고 말했다.

하긴 통신에 대해 모르기는 이석채·황창규 회장 등 역대 '올레 KT'(회사 안팎에서 외부 출신 CEO와 임원들을 가리키는 말, 내부 출신은 '원래 KT'라고 불렀다) CEO들도 마찬가지였다.  

통신에 대해 모르니 어쩔 수 없이 "탈통신"을 외치며 통신과 관련 없는 쪽을 '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벌였다. 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전화국 건물을 호텔이나 아파트 등으로 재개발하고, 통신구 속 구리선을 파내 팔기도 했다.

이를 위해 나름 이유로 분산돼 있던 통신망을 재개발 여건이 못 되는 전화국 쪽으로 몰았고, 이 때문에 통신망이 화재 등에 취약해졌다. 황창규 회장 시절 서울 아현동 국사 통신구 화재 때 피해가 커진 원인이 이렇게 분석되기도 했다.

생태계 속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 영역에 KT가 직접 발을 들여놓는 사례도 이어졌다.

차기 CEO 후보 선임을 놓고 KT 안팎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보면, 이번에 선임되는 KT 차기 CEO 후보도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후보가 확정돼 발표되는 즉시 어느 유력 정치인 내지 정부 인사와 인연 등이 까발려지며 낙하산 논란에 휩싸일 게 뻔하다.

여기에 대통령실 인사나 '친명' 내지 '성남라인' 등과 실오라기 수준이라도 연결된 게 불거지면, 바로 '낙하산 CEO'이란 낙인이 찍힌다.

무엇보다 통신을 모르는 CEO가 또 선임되면, 통신구 화재 피해가 몇 달이나 지속되고, 통신망에 '유령(불법) 기지국'이 득시글댈 것이다. 가입자들이 소액 무단결제 피해에 잇따라 노출되지만 원인과 경로조차 파악 못하는 사태를 또 겪을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모두의 AI' 역시 사상누각 꼴이 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에게도 악몽이 될 수 있다. 벌써부터 KT CEO가 바뀌는 순간, 김영섭 사장 시절 올레 KT들이 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벌여놓은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쓸데 없는 것'으로 간주해 엎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T CEO가 이석채 회장에서 황창규 회장으로 바뀔 때도, 수백명에 달하던 올레 KT 임원들이 한 명 열외 없이 정리됐고, 내부 전산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그동안 추진돼온 대형 사업들이 대거 엎어졌다. 이 비용이 실적에 반영되며, KT는 100여년 역사 상 첫 연간 기준 적자를 기록했다.

KT는 민영화 이후 23년이 지났지만, 아직 민간 기업이라고 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KT는 민영화 이후 '오너가 없는 국민 통신사'라는 점을 앞세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힘 있는 쪽이 빨대를 꽂아 맘껏 빨아먹고 튈 수 있는 통신사'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흥미로운 점은 KT 내부 임직원들이 낙하산으로는 오는 올레 KT CEO와 임원들을 위해 손수 카펫을 깔았다는 사실이다. KT 사외이사들도 이런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KT 투자자들과 KT를 생존 토대로 삼고 있는 임직원들의 목소리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대부분 침묵했다. KT 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KT가 민간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는 내부 동력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내부에 공기업 문화가 여전하고, 외부에서 KT를 보는 시각도 공기업 시절 수준에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전 임원이 꼽은 30년까지는 아직 7년이 남았다. 7년 뒤 KT 차기 CEO 선임 때는 KT CEO로써의 자질이 먼저 거론되고 평가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에 앞서 이번에 KT 노조나 이사회가 연습 차원에서라도 차기 CEO 후보 선임 과정에서 침묵하고, 남의 일처럼 여기던 그동안의 모습과 달라진 행보를 보여줄 수는 없을까.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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