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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주사체제 전환에 일단 시동을 걸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정치권에서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지주사체제 전환에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롯데그룹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롯데그룹이 유통, 호텔서비스, 식품, 화학의 4개 BU(Business Unit) 체제로 개편을 추진하면서 지주사체제 전환의 시동을 걸었지만 금융계열사의 처리가 최대 현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롯데그룹은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 롯데캐피탈, 마이비, 부산하타로카드, 한페이시스, 이비카드, 경기스마트카드, 인천스마트카드, 롯데오토리스 등 10곳의 금융계열사를 두고 있다.
2015년 기준 롯데그룹 금융계열사 매출은 5조4472억 원으로 전체매출의 8.0%, 영업이익은 3104억 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7.7%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금융계열사 자산총계는 25조511억 원으로 그룹 전체자산의 20%가 넘는다. 특히 유동자산만으로 한정하면 금융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45.1%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유통업을 근간으로 하는 롯데그룹은 유동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금융계열사의 중요성은 단순 실적 이상으로 크다.
하지만 신 회장이 지주사체제로 개편할 경우 이대로라면 금융계열사를 포기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사는 금융계열사를 거느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 지주회사로 전환했던 대기업집단은 금융계열사를 모두 정리했다. LG그룹은 2003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LG증권과 LG카드 등 금융계열사를 매각했고 두산그룹도 2009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두산캐피탈을 처분했다.
두산그룹은 지분 유예기간인 2012년까지 두산캐피탈 처분에 실패해 56억 원의 과징금을 물기도 했다. 두산그룹은 결국 두산캐피탈 지분을 두산중공업아메리카와 두산인프라코어아메리카에 넘기며 규제를 피해갔다. 공정거래법은 국내 회사에만 금융자회사 보유 제한의 규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 회장이 두산그룹처럼 롯데그룹의 금융계열사를 일본롯데 쪽으로 넘겨 규제를 피해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해외계열사 지분 공시를 강화하는 등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해외계열사 규제 강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 위안부 합의와 소녀상 설치 등으로 반일정서가 고조되고 있어 자칫 반기업 정서를 부추길 가능성도 부담스럽다.
결국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이 롯데그룹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법으로 여겨진다. 롯데쇼핑이 지분 93.78%를 보유하고 있는 롯데카드를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삼아 다른 금융계열사를 거느리도록 하면 지주사체제 전환이 한결 손쉬워진다.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법안은 19대 국회 때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도입 의지는 여전히 강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기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의 금산분리 강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장담하기 어렵다. 공정위에서 아직 관련 법안을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금융이 재벌의 금고가 돼서는 안된다”며 “금산분리로 재벌과 금융은 분리시키겠다”는 금산분리 강화 정책을 내놓았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역시 22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금산분리 강화를 예고했다.
신 회장이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가정하고 지배구조개편 시나리오를 마련했다가 지배구조개편의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삼성증권 지분을 확대하며 중간금융지주회사의 토대를 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작 중간금융지주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지주사체제 전환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