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경영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태광산업> |
[비즈니스포스트] 주주행동주의 펀드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2025년 3월20일 공개주주서한을 통해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등기임원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태광산업에 요구했다.
이는 트러스톤이 사법 리스크 등을 이유로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에 부정적이던 기존 입장을 뒤집어 경영 복귀를 촉구한 것이다.
트러스톤은 2025년 3월 말 현재 태광산업 지분 5.95%를 들고 있다. 이 전 회장(29.48%), 티알엔(11.22%), 이 전 회장의 조카인 이원준씨(7.49%)에 이은 4대주주다.
트러스톤 쪽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한 이후 회사 경영진과 함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최근 태광 쪽과 모든 대화가 중단됐다”면서 “태광산업의 경영 정상화와 주식 저평가 해소를 위해서는 최대주주이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전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정식 복귀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중 대화가 중단됐다는 지적은 태광산업의 대표이사 변경으로 의사소통이 단절됐다는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월 성회용 전 대표이사의 사임을 가리킨 것으로 추정된다.
트러스톤 쪽은 이 전 회장이 상근 사내이사로 복귀가 힘들면 기타비상무이사로라도 이사회에 참여하라는 입장을 보인다.
트러스톤의 제안에 대해 태광산업은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가 건강상 이유로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2023년 8월 복권 이후 경영 복귀를 준비해 왔으나 건강상 이유로 상근 집행임원으로 경영활동을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료진의 권고를 받아, 태광산업 비상근 고문으로서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전 회장은 400억 원대 회삿돈 횡령 및 배임혐의로 2011년 1월 구속 기소됐고, 2019년 징역 3년 형이 확정돼 복역하다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 5년간 관련 기업 취업을 제한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규정이 적용돼 경영에 복귀할 수 없었는데, 2023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경영 복귀의 길이 열렸다.
2025년 4월에는 검찰에서 김치·와인 강매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사법리스크의 상당 부분이 해소됐다.
이 전 회장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오너 일가 소유의 휘슬링락 컨트리클럽(CC)과 메르뱅으로부터 김치와 와인을 고가에 구매하도록 태광그룹 계열사들에게 강요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다만 이 전 회장은 2011년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이 때문에 병보석 상태로 재판을 받는 등 건강 문제가 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21일 씨저널과 통화에서 “이 전 회장이 여전히 건강 문제로 경영 복귀가 어렵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 트러스톤과 이호진의 속내
이호진 전 회장의 복귀에 대한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태도 전환은 경영 전면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전 회장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러스톤은 최근 태광산업의 대표 교체가 주주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이 전 회장의 의중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트러스톤 쪽은 앞서 2월, SK브로드밴드 등 자산매각대금의 20%를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쓰고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 24.41% 중 15%를 소각하자는 내용의 주주서한을 태광산업에 보냈다.
트러스톤 쪽은 이 주주제안에 대해 태광산업 내부에서도 긍정적인 기류가 있었는데, 성회용 전 대표가 갑자기 사임하면서 논의가 중단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태광산업은 6월27일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24.41%)와 교환이 가능한 교환사채(EB) 3186억 원어치 발행을 결정했다. 이에 트러스톤은 7월1일 법원에 교환사채 발행 중단 가처분 신청을 냈고, 태광산업은 2일 교환사채 발행 절차를 중단했다.
이번 교환사채는 태광산업이 관계사 티투프라이빗에쿼티(PE)를 통한 애경산업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두고 태광산업 주주와 시민사회에서는 오너 3세 지배력이 높은 사모펀드(PEF)를 승계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결국 자사주를 인수합병과 승계 작업에 사용하기 위해 주주제안을 무시한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성회용 전 대표 교체 사례 외에도 태광그룹은 계열사 대표이사 교체가 매우 잦은 기업으로 손꼽힌다. 태광산업의 경우만 해도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5번의 대표이사 변경을 공시했다. 성 전 대표도 2024년 3월 선임됐으나 1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복잡한 그룹 내부 사정과 변덕이 심한 이 전 회장의 영향력 때문으로 본다.
요컨대 트러스톤은 이 전 회장에게 은둔경영을 중단하고 자신을 드러내 떳떳하게 책임경영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이성원 트러스톤 ESG운용부문 대표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전 회장이 태광산업의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회사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현재 상태보다는 차라리 이사회 정식멤버로 참여해서 투명하게 책임경영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반면 태광산업 쪽의 해명은 공식적으로 경영에 복귀하지 않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도를 유지하려는 이 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은 굳이 공식적으로 경영에 복귀해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다시 부각시키고 일거수일투족을 검증 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