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이임용 창업주 겸 전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이 전 회장이 3남인데도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은 두 형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장남인 이식진 전 부회장(1948년생)은 부친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았으나 2003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차남인 이영진씨(1951년생)는 그보다 앞선 1994년 사고로 타계했다.
두 형의 요절로 이 전 회장은 2004년 42세의 나이에 경영권을 물려받고 회장이 됐다.
이식진 전 부회장은 3남2녀, 이영진씨는 1남1녀를 각각 남겼다.
그런데 이식진 전 부회장의 장남 이원준씨(1978년생)의 존재가 태광그룹 향후 승계구도에 변수가 될 것으로 주목하는 업계의 시선이 있다. 태광그룹은 원래 장자승계를 원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원준씨는 부친인 이 전 부회장의 지분을 상속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지분을 들고 있다. 태광산업 지분율 7.49%로 이 전 회장(29.48%)과 티알엔(11.22%)에 이은 3대주주다. 또 티시스(2.08%), 흥국생명(14.65%), 흥국자산운용(2.00%), 고려저축은행(23.15%) 지분도 갖고 있다.
이원준씨의 형제·자매인 이동준씨, 이태준씨, 이정아씨, 이성아씨도 계열사 지분을 나눠 갖고 있어 이를 모두 합하면 만만치 않은 세력이 된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원준씨의 높은 금융 계열사 지분율에 주목한다. 이는 향후 태광그룹의 경영권 승계구도에 변수가 될 수 있다.
만약 태광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이 추진된다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비금융 계열사들이 보유한 금융 계열사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이는 금융 계열사에 대한 이 전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이원준씨의 지배력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 전 회장의 아들 이현준씨가 금융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현준씨가 보유한 금융 계열사 주식은 흥국증권 우선주뿐이다.
이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불거지면서 이원준씨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이 전 회장은 계열사를 이용해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만약 이 전 회장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고려저축은행의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상호저축은행법이 대주주 적격성 유지요건 중 하나로 ‘사회적 신용’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이 적격성을 충족하지 못하면 의결권은 지분 10%로 제한되며, 금융당국이 10%를 초과하는 지분을 매각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지분 23.15%를 보유한 이원준씨가 고려저축은행 최대주주가 된다.
다만 흥국생명, 흥국화재 등 보험 계열사의 경우 대주주 적격성 유지요건이 조세범처벌법, 공정거래법, 금융 관련 법령 위반에 한정돼 있어, 이 전 회장이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태광산업 관계자에 따르면 이원준씨는 현재 태광그룹에 근무하고 있지 않다.
◆ 장조카 의식하는 이호진
이호진 전 회장은 이원준씨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아들인 이현준씨 승계 작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전 회장은 편법 승계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2006년에는 당시 12세에 불과하던 이현준씨가 티시스와 티알엠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각각 지분 49%를 확보했다. 앞서 2005년에도 이현준씨가 한국도서보급 지분 49%를 인수했다.
이후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티시스에 일감을 몰아줬고, 티시스는 태광산업과 대한화성 지분을 지속해서 매입해 지배력을 늘렸다.
업계에서는 이 전 회장이 이원준씨의 존재를 의식해 이 같은 행보를 보인 것으로 본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이자 창업주의 부인인 이선애씨(1927∼2015)가 장손인 이원준씨를 각별히 총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같은 추측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이원준씨 역시 숙부인 이 전 회장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0년 선대회장의 차명재산이 드러나면서 이 전 회장의 형제들이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상속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 이원준씨도 소송에 참여한 바 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이 전 회장이 아예 금융 계열사들을 떼어내어 이원준씨에게 넘겨주고 계열분리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하지만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이 전 회장과 이원준씨가 상호 보유한 금융 계열사 주식과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맞교환(스와프)해야 하는데, 이 전 회장의 금융계열사 주식과 이원준씨의 태광산업 주식의 규모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이원준씨가 고려저축은행 등 일부 금융계열사의 독립경영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