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2일 서울 중구 SK T타워 슈펙스홀에서 열린 ‘사이버 침해 관련 데일리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정치권과 정부가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와 '신규 가입자 모집 중단' 등 SK텔레콤을 상대로 '유심 해킹' 사태의 파장와 가입자 피해를 줄일 실효성 있는 추가 사후 조처를 촉구하는 요구와 권고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가입자를 늘려 SK텔레콤과의 격차를 줄일 호재라며 노래를 불러야 할 KT와 LG유플러스도 어두운 표정을 지어 주목되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 대리점들은 '특수'를 기대하며 유심 추가 확보에 나서는 등 SK텔레콤 가입자 빼오기 영업을 강화하는 모습인데 비해, 경영진 쪽은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이번 SK텔레콤 유심 해킹 같은 사고는 언제나, 그리고 어느 사업자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사업자 쪽에서 보면, 아주 나쁜 선례이나 새로운 리스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표정을 관리하는 중'이란 분석도 나온다.
2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1일 하루에만 SK텔레콤 가입자 3만8716명이 번호이동을 통해 KT와 LG플러스로 빠져나갔다. 이로써 지난 19일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발표 이후 번호이동을 통해 KT와 LG유플러스로 빠져나간 가입자는 15만 명에 육박한다. 이 수치는 나날이 큰 폭으로 늘고, 그만큼 SK텔레콤 가입자 수는 줄어들고 있다.
SK텔레콤이 정부 권고를 수용해 5일부터 신규 가입자 모집을 중단하기로 한데 이어 정치권의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까지 수용할 경우, 번호이동 이탈자 증가와 가입자 감소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의 '최태원 회장 증인 소환' 압박에도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 요구에 확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SK텔레콤 쪽은 하필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정치권과 정부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는 것으로 보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은 표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새 정부의 조직 개편과 인사를 의식해 처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며 "평소 같으면 합동조사반의 1차 조사 결과 발표와 국회 과방위에 불려가 호된 추궁을 당하는 것으로 고비를 넘기는데, 이번에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어떨지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러는 사이 경쟁업체 KT와 LG유플러스의 이동통신 가입자는 쑥쑥 늘고 있다. 2일에도 KT는 번호이동으로만 가입자를 2만117명, LG유플러스는 1만5951명 늘렸다.
평소 같으면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수치다.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발표 전날인 4월18일까지만 해도 두 사업자의 하루 평균 번호이동 순증 가입자는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다. 마이너스를 기록할 때도 있었다.
SK텔레콤이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와 신규 가입자 모집 중단 조처에 나서면, KT와 LG유플러스는 말 그대로 '마른 논에 물 들어오는' 정도의 호재를 만나는 꼴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통신사 대리점 사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SK텔레콤이 방송통신위원회 명령을 받아 영업을 중단했을 때보다도 호재다. 적어도 대통령 선거일까지는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유심도 추가 주문했다"고 말했다.
▲ KT와 LG유플러스도 SK텔레콤의 해킹 사태에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이런 상황은 엇갈린 주가에서도 보여진다. 이날 오전 11시45분 기준 SK텔레콤 주가는 1.66% 하락한 데 견줘, KT와 LG유플러스 주가는 각각 4.05%와 1.37% 상승했다.
하지만 KT와 LG유플러스 경영진 쪽은 마냥 즐거워할 일도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당장은 가입자 수가 늘어나고 매출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우리도 해킹을 당하면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것 아니냐. 아주 나쁜 선례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SK텔레콤의 처지가 남의 일이 아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통신사들은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국회 과방위에서 "(유심 해킹 사태와 관련한) 모든 가입자 피해를 100% 책임진다"고 말한 것도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해킹과 가입자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 시 집단으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잇따르고, 다크웹 등에 특정 이동통신사에서 빼온 정보라고 맛보기로 일부 올려놓고 사업자 쪽에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늘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