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조만간 지분 승계를 마치는 가운데 얼어붙은 업황을 뚫고 계열분리에 앞서 신세계 외형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은 정유경 회장. <신세계> |
[비즈니스포스트] 신세계에 ‘
정유경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은 조만간 보유하고 있던 신세계 지분 전량을 딸
정유경 신세계 회장에게 증여한다. 지분 측면에서 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계열분리가 완료되면 단연 각 그룹의 재계서열은 떨어진다. 더욱이 최근 신세계는 매출 성장이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유경 회장은 계열분리에 앞서 신세계의 외형을 성장시키는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회장의 신세계가 내수 침체 속 얼어붙은 백화점과 면세, 패션업계 업황을 뚫고 성장 페달을 밟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일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정유경 신세계 회장은 5월 말 이 총괄회장으로부터 신세계 보유 주식 전량을 증여받으며 1996년 그룹 입사 뒤 29년 만에 지분을 완전히 승계하게 된다.
신세계는 “각 부문(이마트와 신세계) 독립경영 및 책임경영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고 지분 증여 취지를 설명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0월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정유경 사장의 회장 승진을 발표하며 이마트와 신세계의 계열분리 추진을 공식화했다.
계열분리를 완료하려면 이마트가 45.6%, 신세계가 24.4%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 이커머스 계열사 SSG닷컴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친족 기업 사이 계열 분리를 하려면 비상장사 기준 상호보유 지분 10% 미만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룹 차원에서 SSG닷컴 지분 정리와 관련한 구체적 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선 계열분리가 완료될 때까지 수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유경 회장은 무엇보다 계열분리 전 신세계의 몸집을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세계와 이마트의 계열분리 뒤에는 같은 그룹으로 묶였을 때와 비교해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사 롯데백화점이 롯데백화점과 롯데쇼핑으로 묶여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을 쏟고는 데 반해 신세계백화점은 이마트와 다른 그룹에서 각자의 전략을 펼쳐야 한다.
또 신세계그룹은 전체 매출 가운데 3분의2 수준을 이마트 부문에서 내고 있다.
정유경 회장은 계열분리 뒤 신세계그룹에서 3분의1 수준의 매출을 차지하는 계열사들을 들고 재계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정용진 회장의 그룹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일 공산이 크다.
이 총괄회장은 1997년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될 당시 신세계백화점 점포 2곳과 조선호텔만을 들고 나와 6년 만에 재계순위 22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업계 1위이자 국내 최초 대형할인점인 이마트 사업도 이 총괄회장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날 발표한 2025년 공정자산 총액 기준 대기업 순위에서 신세계그룹은 10위(농협 제외)에 이름을 올렸다.
계열분리가 완료되면 신세계 재계 순위는 30위권으로 떨어지게 된다. 작년 말 기준 자산 총액은 이마트가 43조 원, 신세계가 19조 원이었다. 올해 재계 순위로 따지면 이마트는 14위, 신세계는 31위에 해당한다.
신세계의 연결기준 매출(총매출)은 2022년 12조4939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 11조1322억 원, 지난해 11조4974억 원으로 정체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정 회장이 이를 반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신세계는 백화점(신세계백화점), 아울렛(신세계사이먼), 홈쇼핑(신세계라이브쇼핑), 패션·뷰티(신세계인터내셔날), 면세(신세계디에프), 가구(신세계까사)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주력사업인 백화점은 내수 기반 사업으로 경기 침체 속 시장에서 성장성 관련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외국인과 출국하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면세점은 환율 상승에 따른 매입비용 상승에 올리브영, 다이소 등이 관광코스로 부상하면서 지난해 연간 적자로 돌아섰다. 내수산업인 패션업계 역시 국내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고가의 수입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고환율로 인한 타격을 더 크게 받았다.
정 회장은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통해 신세계의 중장기 목표로 2030년 매출(순매출) 10조 원 달성을 내걸었다. 6년 동안 연간 매출을 50%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다. 정 회장이 어려운 경영환경을 뚫고 신세계 성장 페달을 밟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이 총괄회장이
정유경 회장에게 이마트 지분을 마지막으로 넘긴 것은 2020년 9월이었다. 당시
정유경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에게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각각 8.22%씩 증여했다.
5월30일 이 총괄회장이 나머지 신세계 보유지분 10.21%를 넘기면
정유경 회장의 신세계 지분율은 기존 18.95%에서 29.16%로 높아진다. 정 회장이 내야 할 증여세는 법정 최고 세율인 50%가 적용돼 약 800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 회장은 1996년 신세계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로 신세계그룹에 입사했다. 신세계조선호텔 프로젝트실장을 거쳐 2009년 12월 신세계 부사장으로, 2015년 12월 신세계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10월 말 신세계그룹 인사에서 신세계 회장에 올랐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