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2월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미사에 운집한 관광객과 신도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기후대응에 큰 족적을 남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세계 기후 활동가들은 교황의 업적을 기리며 세계 각국이 교황이 남긴 유산을 기억하고 기후대응을 위한 협력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바티칸 교황청은 21일(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저로 사용하고 있던 바티칸시 성 마르타의 집에서 향년 88세로 선종했다고 밝혔다.
2013년에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2년 동안 빈곤 해소, 세계 평화 실천에 앞장섰다. 항상 낮은 곳에 임하며 '희망의 등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기후변화 해결에 참여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는 정치적 의제로 받아들여져 교회가 목소리를 내기에 부적합한 문제라는 인식이 강했다.
ABC뉴스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첫해 바티칸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한 미사에서 환경 보호 필요성을 언급하고 세계 지도자들이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요청하면서기후 대응을 향한 의지를 처음 드러냈다.
2015년에는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라는 회칙을 세워 '사회 정의 실천을 위한 기후변화 해결'이라는 지침을 수립했다.
같은 해 회칙과 같은 제목으로 발간된 책에서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으며 선진국들의 무책임한 생활 방식과 화석연료 기업들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타임에 따르면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환경과 사회적 위기, 두 가지 별개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사회와 환경 분야 모두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하나의 위기에 마주하고 있다"며 기후위기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같은 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는 역사적 '파리협정'이 성사됐다.
파리협정은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아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조약으로 2025년 현재까지도 국제 기후대응 협력 체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당시 회의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에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 21일(현지시각) 프랑스 남부 루르드에서 가톨릭 신도들이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모여있다. <연합뉴스> |
케리 특사는 타임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가 만난 이들 가운데 기후변화 해결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낸 인물"이라며 "그는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도 파리협정이 발표될 당시 세계 지도자들이 발표에 나서면서 하나같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고 전했다.
제임스 마틴 아메리카 미디어 편집국장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만 해도 기후변화는 정치 또는 과학적 문제로만 여겨졌다"며 "하지만 그는 회칙을 통해 이를 우리의 양심, 영적 문제에 달린 일로 전환해 냈다"고 평가했다.
파리협정 성사 이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2018년 열린 바티칸 회의에서는 화석연료 기업들의 행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화석연료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채굴을 이어하는 행태가 부적절하고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2023년에는 '기후위기 해결을 향한 선의를 가진 모든 이에게'라는 공식발표문을 내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의 대응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너지고 있으며 한계에 다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어 "기후변화의 영향이 많은 사람들의 삶과 가족에 점점 더 큰 피해를 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것은 전 세계적 사회 문제이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같은 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접 유엔 기후총회에 참석해 목소리를 낼 계획을 세웠으나 병환이 악화되면서 참석하지 못했다.
국제사회 지도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이어받아 정치적 관점에서 아닌 사회 정의 실천의 관점에서 글로벌 기후대응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21일(현지시각) 유엔 공식 채널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을 애도하는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유엔> |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21일 공식성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 인간의 존엄성, 사회적 정의 실천을 위한 초월적 목소리였다"며 "그는 모든 사람, 특히 삶의 가장 끝에 남겨지거나 갈등의 공포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신앙, 봉사, 그리고 연민의 유산을 남겨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의 목표와 이상을 향한 헌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남겨주었다"며 "그는 모든 신앙을 위한 신앙인으로서 모든 신념과 배경을 사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줬다"고 강조했다.
케리 특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위기로 인한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데 깊이 관여했다"며 "그는 무엇보다도 인도주의를 먼저 생각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