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보코리아가 올 상반기 국내에 출시하는 소형 전기 SUV EX30. <볼보코리아> |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수입차 시장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6년 만에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차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가운데 국내에서 판매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수입 완성차 업체들이 각자도생 전략을 펼치고 있어 올해를 기점으로 수입차 시장 판도에 격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13일 국내 자동차 업계 판매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내수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특히 수입차 판매가 급격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현대자동차(제네시스 포함), 기아, KG모빌리티, 한국GM, 르노코리아 등 5개 국산 완성차업체 판매실적을 종합하면 국내에서 올해 1~4월 합산 44만1189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전년 동기(49만4753대)보다 10.8% 감소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같은 기간 수입차의 경우 7만6143대가 팔려 작년 1~4월(8만2594대)보다 7.8% 감소했다.
다만 이 통계에는 작년에 빠졌던 KAIDA 비회원사 테슬라가 올해는 포함됐다. 이를 고려해 테슬라를 제외한 수입차 판매량을 보면 6만8221대로 1년 전보다 17.4%가 줄었다.
올해 들어 수입차 판매량이 국산차보다 더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은 4년 만에 역성장을 기록했다. 지난 10년 동안 수입차 연간 판매량이 전년보다 감소한 해는 폭스바겐 등의 디젤게이트 영향을 받은 2016년과 일본과의 수출 분쟁으로 '노 재팬' 운동이 일었던 2019년뿐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수입차 시장은 26년 만에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할 공산이 커 보인다. 1987년 한국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이래 2년 연속 전년 대비 수입차 판매량이 뒷걸음친 때는 IMF 외환위기가 온 나라를 덮쳤던 1997년~1998년 단 한 번뿐이다.
2002년 1.3%로 처음 1% 내수 자동차 시장 벽을 넘은 수입차 판매 비중은 2012년 10.01%, 2022년 19.69%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18.22%로 낮아졌다.
수입차 업체들은 국내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각자도생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BMW에 밀려 2016년 이후 7년 만에 수입차 판매 1위 자리를 내준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국내 신차 9종을 내놓고 '왕정복고'를 노린다.
앞서 올 1월 국내 7년 연속 수입차 1위를 기록한 E클래스를 시작으로 2월 CLE 쿠페, 4월 마이바흐 GLS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했다.
상반기엔 EQA·EQB 부분변경 모델과 CLE 카브리올레가, 하반기엔 마이바흐 EQS SUV, G클래스 부분변경 모델, G클래스 최초의 전기차 G580이 출시된다.
BMW도 10종의 신차를 내놓고 맞불을 놓는다.
앞서 1월과 2월, 4월에 각각 XM 레이블 레드와 X1 M35i, X2 완전변경 모델을 출시했다. 이어 상반기 4시리즈 쿠페 및 컨버터블 부분변경 모델,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신차 iX2를, 하반기 4시리즈 그란쿠페 부분변경 모델과 이에 기반한 전기 세단 i4, 완전변경 모델인 중형 SUV X3, 고성능 세단 M5를 잇달아 내놓는다.
이들 국내 수입차 '톱2' 브랜드는 모두 올해부터 차량에 토종 티맵 내비게이션을 탑재하며, 수입차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내비게이션 성능 개선에 나선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1월 출시한 신형 E클래스에 출시 시점부터 차량 내비게이션에서 티맵 모빌리티의 실시간 교통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올 하반기부턴 벤츠에 최적화한 차량용 내비게이션 티맵 오토를 탑재하고 앞으로 티맵 적용 차량을 확대하기로 했다.
BMW도 2월 출시한 X1을 시작으로 X2에도 티맵 기반 한국형 BMW 내비게이션을 탑재했다. 회사는 2019년부터 티맵모빌리티와 협력해 국내 환경과 소비자에 최적화한 맞춤형 내비게이션을 개발해왔다.
벤츠코리아는 올해 '홍해 사태'로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서 올 1월 출시한 최고 인기 수입모델 E클래스 판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올 1~3월 판매량(1만720대)이 전년 동기보다 28.3%나 감소했다.
하지만 4월 한국에 들여오는 E클래스 물량이 늘면서 작년 12월 이후 첫 월간 판매 1위자리를 탈환하며 BMW 추격의 불씨를 댕겼다.
지난해 4년 연속 수입차 판매 3위 기록한 아우디가 올해 들어 4월까지 누적 판매량에선 10위로 밀려난 가운데 새로운 3위권 경쟁도 점입가경이다. 아우디는 수입차 시장침체 속 신차 공백기가 겹치면서 올해 1~4월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74.7%나 급감했다.
작년 연간 판매량에서 BMW, 벤츠, 아우디, 볼보에 이어 5위에 해당하는 판매실적을 올렸던 테슬라는 올해 1~4월 국내에서 7922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기(1417대)보다 판매량을 무려 5.6배나 늘리며 판매 3위를 달리고 있다.
테슬라는 얼어붙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홀로 올해 누적 판매량을 늘렸다.
테슬라는 지난해 7월 중국에서 생산한 모델Y 후륜구동(RWD) 모델을 국내 들여오면서 가격을 기존 미국산 모델보다 2천만 원 넘게 내렸다.
지난달엔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한 모델3 첫 부분변경 모델이 판매에 합세했다. 판매가격은 RWD 모델이 5199만 원, 사륜구동(AWD) 모델이 5990만 원이다. RWD 모델은 보조금 적용 전 기준으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시작 가격보다 41만 원이 싸다.
볼보차와 일본 도요타 고급 브랜드 렉서스도 강력한 3위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이 역성장한 가운데에서도 역대 최다 판매량(1만7018대)을 경신하며, 1998년 한국 법인 설립 이래 첫 수입차 판매 4위에 올랐다.
볼보코리아는 지난 2021년 XC60을 시작으로 선제적으로 티맵 내비게이션을 도입해 수입차 가운데서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내비게이션 성능을 크게 개선했다.
볼보코리아는 볼보 인포테인먼트 서비스 개발을 위해 2년 동안 300억 원을 투자했다. 티맵 인포테인먼트는 자동차에 특화된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차량용 내비게이션 '티맵 오토',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플랫폼 '누구(NUGU)', 음악플랫폼 '플로(FLO)' 등으로 구성됐다.
볼보코리아는 올 상반기 소형 전기 SUV 'EX30' 국내 출시를 통해 판매량을 더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판매 시작 가격은 4945만 원으로 기아 니로 전기차 상위 트림(4850만 원)과 거의 비슷하다.
회사는 올해 판매 목표를 1만8천 대 이상으로 잡았다.
이윤모 볼보자동차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11월에 열린 EX30 공개 행사에서 "EX30을 앞세워 한국 판매량을 올해 1만7천대에서 이른 시일 내 3만 대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렉서스도 강력한 하이브리드차 라인업을 기반으로 올 1~4월 누적 판매량에서 4055대를 기록하며, 불과 160여 대 격차로 볼보를 추격하고 있다. 국내 하이브리드차 인기에 다시 불이 붙고 있는 가운데 렉서스의 국내 수입 하이브리드차 판매 비중은 90%를 넘는다.
지난해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난 지 5년차를 맞은 렉서스는 전년 대비 연간 판매량을 78.6% 늘리며, 수입차 판매 5위(테슬라 제외)에 올랐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