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의 큰 방향성을 제시하는 신년사에서 구체적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은 드물다. 그만큼 롯데그룹의 미래를 위해 인공지능의 역할을 강조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유통부터 화학, 식품, 건설,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사업을 펼치는 그룹 입장에서 각 계열사마다 흩어진 자산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첫 단추가 바로 인공지능 기술 고도화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여겨진다.
신 회장의 발언에 따라 앞으로 롯데그룹에서 인공지능 기술 고도화의 임무를 맡고 있는 롯데정보통신의 중요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이 올해 신년사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주문했다.
2일 신동빈 회장이 발표한 롯데그룹 신년사 발언을 살펴보면 예년과 다르게 인공지능을 강조해 눈에 띈다.
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핵심 역량 고도화와 창의적이고 실행력 강한 조직 문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조 등을 강조했다. 예년 신년사와 비교할 때 특별히 강조했다고 볼 만한 사안들은 아니다.
다만 이번 신년사에서는 ‘인공지능(AI) 트랜스포메이션’ 시대를 맞이해 사업 혁신을 서둘러 달라는 당부를 추가했다.
신 회장은 “롯데만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며 “인공지능 전환을 한 발 앞서 준비한다면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 3년 동안 신년사를 살펴보면 특정 기술을 주목한 뒤 이에 주력해줄 것을 주문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기조를 깬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신 회장이 옛 사장단 회의 격인 VCM 등에서 인공지능과 롯데그룹의 접점을 만들자고 강조한 적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룹의 한 해 기조를 두루 살피며 방향을 제시하는 신년사에서까지 인공지능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그룹 입장에서 인공지능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신 회장은 “우리 그룹은 인공지능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미 확보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업무 전반에 인공지능 수용성을 높이고 ‘생성형 인공지능’을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 기술 투자를 더욱 강화해 달라”며 구체적 방향성도 제시했다.
롯데그룹 각 계열사별로 살펴보면 인공지능과 관련해 투자를 진행하거나 실제 기술 개발 및 도입을 이미 마친 회사들은 많다. 하지만 여러 계열사 가운데서도 롯데정보통신의 역할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정보통신은 롯데그룹의 정보기술(IT) 서비스 지원과 설계, 유지보수 운영을 주력으로 하는 계열사다.
다른 대기업들도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열사를 하나씩 두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와 특별히 다를 것 없는 회사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롯데정보통신이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롯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매우 다양하다는 데 있다.
주력인 유통과 화학뿐 아니라 식품, 호텔, 관광, 서비스 등을 영위하는 계열사만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97곳이나 된다. 롯데정보통신은 이렇듯 사업적 특성이 전혀 다른 계열사마다 맞춤형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사업을 펼쳐왔다.
최근 롯데정보통신이 주력하는 분야는 각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빅데이터를 인공지능 기반으로 분석해주는 플랫폼 ‘스마트리온’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롯데그룹 전용 생성형 인공지능 플랫폼인 ‘아이멤버’를 구축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 그룹사 통합 디지털 전환의 역할을 맡고 있는 롯데정보통신의 역할이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서울 금천구 롯데정보통신 사옥. <롯데정보통신>
롯데정보통신이 지난해 9월 ‘롯데그룹 정보화전략세미나’를 열고 ‘AI와 빅데이터 기반의 경영 인사이트’라는 주제로 그룹 통합 시너지 전략을 제시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맥이 닿는다. 계열사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 플랫폼과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해 그룹이 가진 모든 자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2023년 9월 열렸던 행사에 롯데그룹 계열사 최고정보책임자(CIO),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등 150여 명이 참석했을 정도로 롯데그룹의 디지털 전환은 롯데정보통신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롯데정보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처음 선보인 스마트리온은 고객사 내부 데이터와 공공, 민간, 소셜 등 외부 데이터를 결합하고 분석해 고객 맞춤 경영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물리적 통합 없이도 그룹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 모델의 개발부터 서비스 도입과 운영까지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롯데그룹 계열사 10여 개의 빅데이터 결합을 마친 것으로 파악되는데 올해 더욱 많은 계열사에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인공지능을 활용한 사업 기회가 더욱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정보통신은 1996년 12월 설립된 이후 창사 이래 최초로 2022년 연결기준 매출 1조477억 원을 내며 ‘매출 1조 원’대 벽을 넘었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2천억 원대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