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두성산업 대표가 실형을 받은 만큼 삼표그룹의 경영공백 발생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정 회장의 장남인 정대현 부회장에게 시선이 몰린다.
13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정 회장 등 삼표그룹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관련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이 22일 열린다. 정식 재판은 2024년부터 진행된다.
삼표그룹은 지난해 '국내 1호' 중대재해 사고를 겪었다.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이틀만에 경기 양주시 은현면 소재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사가 무너져 내려 노동자 3명이 매몰돼 숨진 것이다.
검찰은 정도원 회장을 채석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 등 임직원에게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린 최종 의사결정권자로 보고 지난해 3월 정 회장과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10월24일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삼표그룹은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위헌법률심판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1호 두성산업이 앞서 법원에 신청했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기각돼 이를 실행하기 어려워졌다는 시선이 나온다.
두성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을 위반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해달라고 창원지법에 신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11월3일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배치되지 않고 법정형의 높고 낮음 역시 헌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며 이를 기각했다.
두성산업은 경남 창원의 에어컨 부품 제조회사로 유해화학물질을 다루고 있음에도 작업장에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 16명이 독성간염에 걸렸다.
두성산업 대표는 11월3일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항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헌성을 계속 주장할지는 미지수다.
삼표그룹이 중대재해처벌법 위헌법률심판을 고려한 것은 시간을 끌기 위한 것이로 여겨진다. 위헌심판 제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리하게 되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재판이 일시중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성산업의 위험법률심판 제청이 기각된 만큼 삼표그룹도 전략을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더욱이 두성산업 재판 결과에 비춰 정 회장도 사법처벌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까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선고가 끝난 11개 기업이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를 고려하면 삼표그룹이 경영공백에 놓일 가능성이 떠오른다. 정대현 부회장의 경영승계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정 부회장은 지난 11월 초 실시된 정기 임원인사에서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19년 사장에 오른 뒤 4년 만에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06년 삼표에 입사해 삼표시멘트 부사장, 사장 등을 거쳐 그룹 부회장까지 올랐다. 현재 정 부회장은 별도의 계열사 직책 없이 부회장직만 수행하고 있다.
정도원 회장은 1남2녀를 두고 있지만 삼표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정대현 부회장뿐이다. 사실상 승계절차를 2020년부터 차근차근 추진해오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자회사 삼표산업이 모회사 삼표를 인수하는 역합병으로 삼표그룹의 지배구조가 변화했다. 총수일가-삼표-삼표산업의 지배구조가 총수일가-삼표산업-계열사로 변화한 것이다.
이에 앞서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스피네이처는 3월 삼표산업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1.74%에서 17.21%로 늘렸다.
에스피네이처는 정 사장이 71.95%를 지니고 있는 사실상 개인 기업으로 골재·레미콘의 제조·판매 철스크랩 수집·가공 판매, 제강슬래그 처리대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삼표산업의 지분율은 정도원 회장(30.33%), 정대현 부회장(5.22%), 에스피네이처(18.23%), 자기주식(44.73%) 등으로 구성됐다.
삼표와 삼표산업 합병 전 지배구조 정점에 있던 삼표는 정 회장이 지분 65.99%를 들고 있었고 에스피네이처 19.43%, 정 부회장이 11.34%를 쥐고 있었다.
정 부회장이 에스피네이처에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합병을 통해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의 실질적 지분격차가 35.22%포인트에서 6.88%포인트까지 줄어든 셈이다.
▲ 정대현 삼표그룹 부회장.
투자금융업계에서는 승계를 위해 삼표산업 인적분할 또는 에스피네이처와 삼표산업의 합병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대주주가 기업을 인적분할해 신설회사의 신주를 배정받으면 의결권이 살아난다. 삼표산업을 지주사(계열사 지분 보유)와 신설회사로 나눈 뒤 대주주가 가진 신설회사 지분과 지주사가 자사주를 통해 받은 신설회사 지분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를 자사주의 마법이라 일컫는데 큰 자금 소요 없이 계열사 지분을 확보해 계열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에스피네이처는 정 부회장이 승계를 위한 자금 마련 역할도 하고 있다. 에스피네이처는 그동안 높은 배당성향(배당금총액/당기순이익)을 보여왔다. 2019년 75.77%, 2020년 135.62%, 2021년 117.12%, 2022년 59.89% 등으로 2020~2021년에는 벌어들인 순익보다 배당금 지출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2022년 회계연도에는 상환우선주에 배당을 지급해야 해 정 부회장이 배당을 적게 가져갔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향후 재판 등과 관련해 "사법절차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