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3-05-23 14: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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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에 반발한 간호계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진료지원 간호사(PA·Physician assistant)’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왔다.
‘수술실 간호사’로 불리는 PA간호사는 불법 의료행위 논란이 계속 제기돼왔음에도 의료인력 부족을 이유로 의사를 대신해 일부 의료행위를 수행해왔다.
▲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진료지원 간호사(PA·Physician assistant)’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진료지원간호사(PA, Physician Assistant)들이 5월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는 그동안 노동계 집단행동에 법과 원칙에 따른 강경대응이라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간호계가 PA 업무 등을 불법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거부하는 전략을 펴면 정부가 대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간호법 제정안에 관해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상태에서 단순히 (국회) 표결로 정리할 것이 아니라 수정안을 가지고 서로 협의해서 직역 간 갈등을 풀고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야당에) 제안했다"며 ”민주당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윤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간호 업무 외 불법 의료행위 지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을 선언했다. 간호협회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진료 신고 사례 및 현황을 발표하기로 했다.
간호협회는 전날 보도자료에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지시하는 △치료·처치 및 검사(봉합·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처방 및 기록(대리처방) △약물 관리(항암제 조제) △검사(채혈·조직 채취) △대리수술 및 수술보조 △튜브관리(삽관) 등 24가지를 ‘불법 업무 리스트’로 규정했다. 사실상 현재 PA간호사가 하는 역할을 거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간호법 제정안에 찬성하는 야권도 간호사가 불법 의료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하겠다며 간호협회 준법투쟁에 힘을 보태는 모습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이날 간호사가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등 의료기관의 무면허 의료행위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불법 의료행위 거부를 이유로 간호사에게 불이익을 주면 처벌받는 규정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대학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PA간호사는 약 1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PA간호사는 전공의 등과 함께 수술·시술 보조를 하고 있는데 의사가 현장에서 세세한 지도를 하지 않아 불법 의료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실제 경찰은 최근 삼성서울병원의 PA간호사 채용 의혹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삼성서울병원의 PA간호사가 초음파검사로 소변량을 측정하는 등 실질적 의료행위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의료법 위반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
의료법 제2조는 간호사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진료의 보조'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사가 해야 할 일을 PA간호사가 대신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간호사들의 목소리에 호응하는 의견이 나온다. 대학병원 전공의와 레지던트로 구성된 대한전공의협회도 PA간호사 문제를 제기한 간호협회의 투쟁에 환영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전공의협회는 19일 입장문에서 “대리처방과 대리수술을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는 없다”며 “PA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PA 간호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수를 늘리는 등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의사 채용을 늘리는 것은 병원의 재정과 연결돼 있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전공의협의회는 “늘어나는 병상과 상급종합병원 의료이용에 비해 병원이 의사와 간호사를 충분히 채용하지 않고 있다”며 “PA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 내 전문의 수를 늘려야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후 간호사 처우를 국가가 책임지고 개선하겠다며 간호계에 당근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PA간호사 문제까지 더해져 더욱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파악된다.
당장 흉부외과나 외과에서 근무하는 PA간호사들이 법으로 명시된 간호사 업무 외의 지시를 거부하는 단체행동에 계속 나선다면 수술실 의료공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간호법제정안 사태가 PA간호사 문제로 번지는 일을 차단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복지부는 22일 입장문을 내고 “간호법이 시행된다고 PA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PA문제와 간호법제정안을 연계하는 데 선을 그었다. 간호협회의 불법 의료행위 거부에 관해서도 간호사가 수행 가능한 업무 범위는 사안마다 개별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복지부는 "간호협회 리스트를 일률적으로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대법원 판례를 보면 (불법 의료행위는) 환자에게 끼친 위해의 정도나 간호사 숙련도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서 판단하지 의료행위의 종류에 따라 불법과 합법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PA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복지부가 구성할 ‘PA협의체’에는 전문가와 현장 종사자, 관련 단체 등이 참여하고 이르면 6월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