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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켓몬 고' 게임 이미지. |
“영토는 더이상 지도에 선행하거나, 지도가 소멸된 이후까지 존속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고 심지어 영토를 만들어 낸다.”
보드리야르는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시뮬라크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시큘라크르는 프랑스어로 시늉, 흉내, 모의를 뜻한다.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지 않는 원본없는 이미지 같은 것이다. 가상이지만 실재하는 것, 실재하지만 가상인 세계다.
시뮬라크르를 설명하는 다양한 사례가 많지만 여기에 ‘포켓몬고’가 하나 더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증강현실을 이용한 모바일게임 포켓몬고가 지도에 없던 또 하나의 영토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포켓몬고는 닌텐도의 자회사 포켓몬과 게임 스타트업 나이언틱이 공동개발한 모바일게임인데 증강현실(AR)을 활용했다. 나이언틱은 2010년 구글의 사내벤처 가운데 하나로 출범했다가 지난해 분사해 닌텐도와 계약을 맺고 포켓몬고 게임을 개발했다.
이 게임은 7일 출시되자마자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출시 하루 만에 전 세계적으로 1억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수를 기록했고 이용자 수에서도 트위터를 단숨에 제쳤다. 한마디로 신드롬에 가까운 포켓몬고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길을 걷다가 주변에 포켓몬이 나타나면 진동과 LED 등 조명으로 알려주며 이때 버튼을 누르면 포켓몬을 잡아 아이템을 얻는 방식이다.
미국 뉴질랜드 호주 독일에서 출시됐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선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폭발적 인기가 알려지면서 게임이 가능한 속초, 양양 등 일부 지역에 여행객이 급증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닌텐도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증강현실산업의 대중화가 앞당겨질 것이란 기대 속에 국내에서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 주가도 뛰고 있다.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인 한빛소프트는 14일 코스닥에서 21.68% 오르며 장을 마감했다. 전일 상한가를 기록한 데 이어 이틀째 급등한 것이다. 포켓몬고 열풍에 국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게임업체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포켓몬고는 출시 초반이긴 하지만 기존 모바일게임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혁신적 아이디어란 평가를 받는다. 증강현실을 이용하면서도 게임방식이 간단해 전연령층이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모바일게임인 만큼 이동성이나 활용도 역시 강점이다.
게임업계의 한 전문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포켓몬고를 통해 증강현실 게임을 경험해볼 수 있게 되고 이는 관련 기술의 저변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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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행크 나이언틱 CEO. |
포켓몬고의 열풍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1990년대 일본 2D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을 캐릭터로 내세운 것이다.
포켓몬고의 미국 열풍은 일본 애니메이션 전성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복고적 향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포켓몬고가 기존 모바일게임과 무엇보다 차별적인 점은 게임이란 가상의 세계를 현실 속으로 끌어들인 대목이다. 이는 서부개척의 역사를 통해 '트레저헌트' 같은 놀이를 아직도 즐기고 있는 미국인들의 정서에도 잘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게임의 인기가 산업적인 면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기존의 PC게임이든 모바일게임이든 이용자들이 대개 일정한 공간 속에 갇혀 게임을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에 대해 우려가 높았던 것도 이런 폐쇄적이고 고립된 성격 때문이다.
외신들도 포켓몬고의 인기를 분석하면서 이 게임이 온라인으로 파괴된 인간관계를 다시 묶어주고 있다는 점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CNN은 “게임이 출시되고 난 뒤 포켓몬고를 하는 성인들이 공원에 모여 커뮤니티를 결성해 함께 즐기는 문화생활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비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며 “이삼십대가 운동과 같은 바깥활동에 무관심했는데 이 게임으로 밖으로 나가게 됐다”고 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