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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히어로](2-1)폐가죽에서 실 뽑는 아코플레닝, 아르마니 구찌가 찾아왔다

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 2023-02-06 08: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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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히어로](2-1)폐가죽에서 실 뽑는 아코플레닝, 아르마니 구찌가 찾아왔다
▲ 매년 세계에서는 폐가죽이 700만 톤 발생한다. 하지만 가죽은 물리적, 화학적 성질상 재생이 쉽지 않은 소재다. 한국의 기업 아코플레닝은 재생가죽실을 만드는 기술로 가죽 재활용에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아코플레님 파주 공장에 쌓여 있는 폐가죽 더미의 모습. <아코플레닝>
[비즈니스포스트] 탄소중립이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재'가 되어가는 시대다.

태생적으로 탄소배출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제조기업에는 탄소중립의 장벽이 더욱 높다.

원재료 단계부터 탄소중립적 소재를 사용해야 하지만 아직 대부분 산업분야에서 원재료 단계부터 탄소중립을 달성하기에는 기술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영역도 많다.

의류를 비롯해 광범위한 영역에서 원재료로 쓰이는 원단 역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많은 도전 과제가 남은 영역이다.

특히 가죽은 물리적, 화학적 성질상 재활용이 어려운 대표적 원단 소재로 꼽힌다.

하지만 매년 세계적으로 700만 톤이 발생하는 폐가죽에서 친환경적이고 탄소중립적 방법으로 실을 뽑아내는 기술을 확보한다면?

실은 바로 원단을 짤 수 있는 재료인 만큼 그 활용성은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술을 실제로 개발해 낸 한국의 기업이 바로 ‘아코플레닝(ATKO planning)’이다.
 
[넷제로히어로](2-1)폐가죽에서 실 뽑는 아코플레닝, 아르마니 구찌가 찾아왔다
▲ 아코플레닝은 김지언 대표가 2012년 창업한 기업이다. 폐가죽에서 재생 실을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해 세계 수많은 기업들로부터 재생가죽 공급 요청을 받고 있다. <아코플레닝>
◆ 설비 빌리려다 소금 맞고 물벼락 맞고, 고생 끝에 개발한 가죽 재생 기술

아코플레닝은 김지언 대표가 2012년 창업한 기업이다.

김 대표는 1996년부터 금강핸드백을 시작으로 에스콰이어, 인디에프, 이랜드 등에서 16년 동안 핸드백 디자이너로 일했다.

매일 소가죽을 만지며 자투리 원단 등 버려지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김 대표는 2007년 광우병 사태 때 우연히 소들을 살처분하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창업을 결심했다.

김 대표는 기술개발을 시작하면서부터 ‘건식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죽을 재생하는 대표적 방식은 ‘습식 방식’이지만 물과 에너지가 많이 사용되고 화학적 처리를 거치는 만큼 공정을 마친 뒤 폐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환경을 위해 버려지는 가죽을 재생하는 기술을 개발하려 했던 김 대표에게 환경 오염을 수반하는 습식 방식은 처음부터 선택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1인 창업으로 회사를 만들어 마땅한 연구 장소도 없는 상황에서 기존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가죽 공장에서 기계를 빌려 겨우 실험을 하는 등 3년의 고생 끝에 2016년 건식 방식의 가죽 재생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오늘날 아코플레닝이 있기까지 폐기물 업종 허가가 안나서 마음고생한 일, 글로벌 스탠다드가 없어 인증을 받을 수 없었던 일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이 개발 과정이었어요."

그는 기계 하나 하나, 설비 하나 하나 테스트해가면서 없는 것을 만드는 일이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그야말로 몸으로 경험했다. 소금으로 맞고, 물을 뒤집어 쓰면서. 

"개발하느라 혼자 이리뛰고 저리뛰며 전전해야 했어요. 어떤 곳에선 설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다가 소금으로 맞은 적도 있고요, 다른 곳에서는 물을 뿌려서 뒤집어 쓴 적도 있었어요. 무릎 꿇고 빈 적도 부지기수죠." 

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생산 공장을 마련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해외 기업과 거래 등을 고려해 수도권에 본사와 공장을 마련하려 했으나 각종 환경 관련 규제가 장애물이었다.

김 대표는 10여 곳에서 공장 설립을 시도한 끝에 경기도 파주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정부의 지원도 김 대표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김 대표는 창업 때부터 개발할 제품 9가지(ATKO1000~9000)를 정해두고 첫 제품인 ATKO1000 개발은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재생가죽 실 제품 ATKO4000을 개발할 때는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김 대표는 "아코플레닝이 창업 5년차에 접어들 무렵이었다"며 "작은 국내 스타트업이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든다는 목표를 모두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넷제로히어로](2-1)폐가죽에서 실 뽑는 아코플레닝, 아르마니 구찌가 찾아왔다
▲ 프리미에르 비죵은 참가 자체가 영예일 정도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섬유전시회다. 한국 기업이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던 프리미에르 비죵에서 아코플레닝은 한 번에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사진은 아코플레닝이 받은 프리미에르 비죵 트로피의 모습. <아코플레닝>
◆ 프리미에르 비죵 어워드 최고상 수상, 아르마니 구찌 아디다스 현대차도 인정한 제품력

유럽 등 선진국에서 친환경 제품을 향한 관심이 커지면서 아코플레닝의 재생가죽도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아코플레닝은 2018년에는 아르마니에 재생가죽 시트를, 2019년에는 아디다스에 재생가죽실로 만든 원단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2019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리미에르 비죵(Première Vision) 어워드에서 만장일치로 심사위원 최고상(Grand Jury Prize)을 받는다.

프리미에르 비죵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섬유전시회다. 참가 승인이 워낙 까다로워 참가 자체가 영예로 불릴 정도다.

2002년 이전에는 유럽 기업들만 참여할 수 있었으나 2002년 이후 유럽 외 지역 기업에도 개방됐다. 한국은 2007년부터 개별기업이 아닌 한국관으로 참가했다.

국내 기업이 프리미에르 비죵에 개별기업 참가를 한 것과 최고상은 물론 수상 자체도 모두 아코플레닝이 최초다.

프리미에르 비죵 심사위원단은 아코플레닝의 재생가죽을 놓고 '지금 이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상징적인 소재'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고생 끝에 개발한 재생가죽 실이 파리에서, 그것도 현업때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프리미에르 비죵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때 심사위원장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울지 마라. 너는 시대를 대변하는 소재를 만들었어, 나는 너가 자랑스럽다.' 그때 그 말씀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세계적으로 친환경, 탄소중립 소재를 향한 수요가 많아지면서 아코플레닝을 찾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이제 아코플레닝으로부터 재생가죽을 공급받는 세계적 기업은 아르마니, 아디다스는 물론 구찌, 나이키, 발렌티노, 타미힐피거, 코치, 현대자동차, 기아 등으로 늘었다.

아코플레닝을 찾는 기업은 의류, 스포츠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차량 시트 제작을 위해 BMW와도, 전자제품 액세서리 제작을 위해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도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파주=이상호 기자
 
[편집자주]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인류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50넷제로’. 2050년까지 전 인류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 ’0’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더 큰 기후재앙을 불러오지 않기 위해 인류는 달성해야 하는 최소한의 목표다.
하지만 유엔환경계획은 각 국가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는 2030년에 1%도 줄이지 못할 것이며 이대로면 세기말 지구 평균 기온이 2.6도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술로 뛰어넘는 기업들이 있다. 30년 전 IT기업들이 전 세계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냈듯, 이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넷제로 전환’을 이끌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이들을 탄소중립을 이끄는 영웅들, 즉 ‘넷제로 히어로’라 이름 붙이고 2023년 연중 기획으로 발굴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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