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확장현실기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어 확장현실기기에서도 애플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왼쪽부터),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 히로시 로크하이머 구글 수석부사장이 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2023에서 협업을 발표하는 장면. <삼성전자> |
[비즈니스포스트] 주요 글로벌 IT기업들이 메타버스(가상공간)를 구현할 최적의 폼팩터로 꼽히는 확장현실(XR)기기를 개발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그동안 유지했던 조용한 기조와 달리 확장현실기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스마트폰에 이어 애플과 확장현실기기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일 IT업계에 따르면 주요 IT기업들을 중심으로 다가올 메타버스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폼팩터 개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폼팩터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모두 구현하는 혼합현실(MR) 및 더 확장된 현실을 제공하는 확장현실(XR) 등 실감형 기술이 적용된 헤드셋 형태다.
헤드셋 형태는 안경 형태로 소형화·경량화하는 쪽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애플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애플이 올해 중 출시하려는 혼합현실 기기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할 것으로 전망된다.
헤드셋 화면을 통해 몰입형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 손가락 컨트롤 기능으로 노트북을 사용하듯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애플 혼합현실기기는 높은 가격대와 짧은 배터리 지속 시간 등의 약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애플은 소비자 반응을 살피며 장기적으로 성장 전략을 짜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란 시각이 좀 더 우세하다.
하지만 애플이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 혼합현실기기 시장의 대중화로 나아가는 변곡점에 이르렀다는 관측도 나온다. 애플 자체의 영향력으로도 메타버스 구현을 위한 확장현실기기 시장이 커지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회사 이름을 바꾼 메타도 올해 안에 가상현실 헤드셋 ‘퀘스트3’을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퀘스트3가 올해 안에 출시된다면 메타는 2020년 출시된 퀘스트2 이후 약 3년 만에 보급형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메타는 메타버스 사업의 성과가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메타버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리얼리티랩스 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며 다가오는 메타버스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 일본 소니와 파나소닉 등도 각각 플레이스테이션VR2, ‘메가네X’ 등 가상현실 기기를 선보이며 메타버스 기기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VR2는 이달 중, 메가네X는 3~4월 중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도 확장현실 기기 개발을 본격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은 1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2023’에서 퀄컴, 구글과 함께 차세대 확장현실 경험을 만들어감으로써 모바일의 미래에 다시 한 번 변화를 불러오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 히로시 로크하이머 구글 수석부사장도 참석했다. 아몬 최고경영자는 “삼성의 뛰어난 제품과 구글의 경험은 퀄컴의 스냅드래곤 확장현실 기술과 만나 실제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기회를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크하이머 수석부사장은 “구글이 투자하고 있는 흥미로운 분야는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라며 "이러한 차세대 경험을 제공하려면 발전된 최첨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삼성전자, 퀄컴과 협력의 의미를 강조했다.
세 회사의 협력체계는 삼성전자가 확장현실기기를 맡고 퀄컴은 칩셋을, 구글은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 등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구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확장현실기기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는 추측은 많았지만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없다. 이런 삼성전자의 조용한 행보를 두고 전자전문매체 씨넷은 지난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삼성전자의 구글, 퀄컴과 확장현실기기 협력 발표는 시장 진출의 포문을 연 것으로 읽힌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분야 경쟁력은 확장현실기기 시대에도 여느 빅테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전자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기 모두 확장현실기기 부품 공급처로서 영향력을 확대할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와 핵심 칩 부문에서 애플과 비교해 열위에 있다. 애플의 자체 운영체제인 iOS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확장현실기기에서도 ‘애플 생태계’ 구축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애플은 AP(모바일프로세서) 개발 역량도 갖추고 있다. 애플의 AP ‘A15바이오닉’은 삼성전자의 AP ‘엑시노스’는 물론 퀄컴의 스냅드래곤8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로서는 애플에 뒤처지는 분야를 외부 협력사의 도움을 받아 극복할 필요가 큰 상황에 놓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규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퀄컴, 구글의 확장현실 파트너십으로 향후 증강현실, 가상현실 관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협력이 확대될 것”이라며 “이르면 올해 상반기, 늦어도 올해 안에 확장현실 기기를 출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확장현실기기 전용 반도체와 초고화질 디스플레이, 운영체제 경쟁력이 부족하다”며 “파트너십을 통해 부족한 부분이 일부 채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