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5대 시중은행 희망퇴직에 따라 약 3천 명의 은행원이 은행을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
[비즈니스포스트] 2023년 새해 희망퇴직으로 짐싸는 은행원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중은행이 인력 감축을 위해 희망퇴직 범위를 꾸준히 넓히는 가운데 직원들 역시 향후 실적 감소에 따른 퇴직금 축소 우려, 제2의 인생을 위한 목돈 마련, 상대적으로 높다고 여겨지는 계약직 재취업 가능성 등에 따라 희망퇴직을 적극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진행한 희망퇴직으로 올해 1월까지 약 3천 명에 육박하는 직원이 은행을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244명보다 30%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2018년 초 2800여 명(2017년 7월 우리은행 희망퇴직 1011명 포함)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NH농협은행을 제외한 4개 시중은행이 아직 희망퇴직 대상자를 확정하지 않았지만 지금껏 나온 수치들은 지난해 수준을 이미 크게 웃돌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지난달 28일부터 1월2일까지 받은 희망퇴직 신청에 730여 명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희망퇴직자 674명보다 10%가량 많은 수준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말 희망퇴직 절차를 마무리했는데 2021년보다 60명 이상 많은 493명이 은행을 떠났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이 연말 연초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시중은행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비대면거래 활성화에 따른 지점 축소에 따라 희망퇴직을 지속해서 실시했다.
하지만 희망퇴직 규모는 점진적으로 늘고 있는데 시중은행이 희망퇴직 범위를 지속해서 넓히고 있는 점이 규모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여겨진다.
올해만 봐도 신한은행은 희망퇴직 대상 직급과 연령이 각각 부지점장 아래와 만 44세(1978년생 포함)까지 낮아졌다.
이는 시중은행과 직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은 지점 축소는 물론 차장급 이상 중간관리자가 많은 기형적 항아리형 인력구조 개선을 위해 희망퇴직이 필요하다.
국내 은행권은 입행 시기와 상관없이 ‘모두가 차장에서 만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인력 정체가 심한 산업군으로 여겨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이 정례화하기 전에는 명예퇴직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명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에는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며 “희망퇴직은 장기간 근속한 직원에게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조기에 준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직원 입장에서는 실적이 좋을 때 은행을 떠나면 새 출발을 위한 목돈을 든든히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5대 시중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수익 증가 등으로 2022년에도 전년과 마찬가지로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시중은행들은 희망퇴직자에게 최대 36개월치 월 급여를 포함해 자녀 학자금, 재취업 지원금 등을 지원한다.
희망퇴직 대상자의 연봉이나 연차 등을 고려했을 때 1인당 퇴직금은 아무리 못해도 2억~3억 원대, 부지점장급의 경우 보통 4억~5억 원대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중은행의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이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에서 목돈을 단단히 챙겨 나갈 수 있을 때 떠나려는 심리가 은행권의 희망퇴직 확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퇴직금을 받은 뒤 다시 기존 은행에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기대감 등도 희망퇴직 확대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과 함께 계약직 인력 채용공고를 함께 내고 있다”며 “몇 년 전부터 계약직으로 채용할 수 있는 업무 범위도 조금씩 넓혀가고 있고 선택적 근무 등 시간제 근무도 할 수 있어 희망퇴직 후 계약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점점 더 많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급성장 등으로 은행권 이직 문화가 예전과 비교해 활발해진 점도 일부 직원들이 희망퇴직을 원하는 주요 이유로 평가된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30대 중후반 직원들 사이에서는 ‘나는 언제 희망퇴직 대상에 드나’하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구조조정이 아닌 자발적 퇴직에 대한 선택권을 쥐는 것인 만큼 희망퇴직 범위가 넓어지는 것에 반감은 없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올해 같은 경우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노동조합이 희망퇴직 신청 범위를 더 넓혀달라는 요구도 사측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시중은행은 희망퇴직이 크게 늘어나는 데 따른 애로사항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1회성 비용이 크게 발생한다. 시중은행은 지금도 매년 4분기 통상적으로 1천억~2천억 원대 희망퇴직금을 1회성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KB국민은행만 보더라도 신청자 730여 명이 모두 희망퇴직을 하고 한 사람당 퇴직비용을 3억 원으로만 잡아도 희망퇴직 관련 1회성 비용은 2천억 원이 훌쩍 넘어간다.
KB국민은행은 2021년 4분기 희망퇴직 관련 1회성 비용으로 1902억 원을 인식했다.
희망퇴직 과정에서 원하지 않았던 유능한 인재가 유출된다는 점도 시중은행이 풀어야할 과제로 꼽힌다.
또 다른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신청한다고 해서 신청한 직원이 모두 은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며 “자체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희망퇴직 신청자 가운데 대상자를 선정한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