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선 기자 insun@businesspost.co.kr2022-12-16 14: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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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벅스 '경동1960점'의 입구는 경동시장 안에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아무도 찾지 않던 폐극장이 핵인싸들의 놀이터로 변신했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위치한 경동극장이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16일부터 손님을 맞이했다. 정식 개장 하루 전 15일 스타벅스 '경동1960점'을 먼저 찾아가 봤다.
통상 스타벅스가 자리잡는 곳은 대부분 알짜 상권이다. 하지만 스타벅스 '경동1960점'로 향하는 길은 번화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보였다.
경동시장에 도착해 생선, 고기, 떡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을 지나쳐 길을 따라가다 보니 스타벅스 경동1960점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도심 속의 '힙'한 간판과 경쟁하는 대신 낡은 시장 간판들 사이에서 발견한 스타벅스 로고는 조금 낯설다는 느낌을 줬다.
이처럼 외진 곳에 매장이 있는 까닭은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 1960년대 지어진 극장인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경동극장은 1962년에 개관해 1994년에 폐관했다. 그 이후로는 시장 상인들이 사용하는 창고로 활용되던 곳이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한 이한솔 SCK컴퍼니 파트너는 “방치돼 있던 오래된 극장을 부활시키는 의미로 계획한 프로젝트다”며 “경동시장 자체가 MZ세대에게 친숙하지 않은 공간이지만 MZ세대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동1960점 매장 곳곳에서는 옛날 극장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70년대풍의 극장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극장 안 복도가 펼쳐진다. 제법 길다. 복도 양 옆으로 늘어선 좌석들은 음료를 주문하는 곳인 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단식 매장의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배치다.
천장은 목조로 마감이 돼 있다. 실제 경동극장에서 사용됐던 소재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한다. 현대 건축물에서는 잘 찾아보기 어려운 목조 천장을 올려다보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경동극장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스타벅스 '경동1960점'의 천장은 목조로 되어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음료 등을 주문하고 받아가는 바는 오래된 극장의 무대가 연상됐다.
바 위에는 다른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빌 형태의 장식물이 설치돼 있다.
정혜림 작가가 도안한 것으로 커피나무에서 볼 수 있는 꽃, 줄기, 커피열매와 잎 등의 요소를 원형의 형태로 장식했다. 원형은 커뮤니티를 상징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문번호를 알려주는 화면이다.
다른 스타벅스 매장들은 음료를 받는 곳 옆에 있는 작은 화면으로 주문번호를 알려주거나 '크루'가 영수증에 쓰인 번호를 목청껏 외쳐 고객을 부른다.
반면 경동1960점에서는 영사기를 연상시키는 프로젝터가 주문번호를 벽면 2곳에 비춰준다. 주문이 늘어날 때마다 벽면에 주문번호가 하나씩 쌓이게 된다. 비록 영화가 아닌 번호가 벽에 비춰졌지만 옛 영화관 느낌이 났다.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주문하면 닉네임 설정이 가능한데 닉네임이 마치 영화관 스크린에 나오는 엔딩크레딧처럼 올라가는 장면이 연출된다.
▲ 영사기를 연상시키는 프로젝터가 벽면에 주문번호를 비춰준다. 주문이 늘어날 때마다 벽면에 주문번호가 하나씩 쌓이게 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매장에서 일하는 파트너들을 위한 휴게공간도 옛 극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과거 영사실로 사용됐던 곳이 휴게공간이다. 영사실 창문을 통해서는 매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에서는 뜻밖의 이름도 만나볼 수 있다. 매장으로 향하는 계단과 매장으로 들어가는 문 사이 '금성전파사'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금성은 LG전자의 옛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경동극장을 카페로 되살리는 데 함께한 LG전자가 직접 체험 공간을 운영한다. 레트로 감성이 가득 느껴지는 간판에 걸맞은 체험공간에는 옛 전파사의 역할에서 이름을 따온 '개성고침코너', '마음고침코너' 등이 있다. 개성고침코너에서는 노트북이나 핸드폰 등의 외관을 스스로 꾸며볼 수 있다. 마음고침코너에서는 분해가 쉬운 친환경 화분에 모종을 심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한솔 파트너는 “폐극장을 MZ세대들의 놀이터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며 “레트로 문화에 앞장서는 LG전자와 함께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아 참여를 제안하게 됐다”고 귀뜸했다.
모든 체험공간 이용은 무료다. 개성고침코너에서는 리사이클링 리폼 굿즈를 판매하는데 수익금은 전부 경동시장을 위한 기금 조성에 사용된다.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데도 참여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LG전자 측은 스타벅스 경동1960점의 ‘상생’ 취지에 끌렸다고 설명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전통시장 활성화와 지역사회와의 상생이라는 스타벅스의 입점 취지에 공감했고 사회공헌을 실천하기 위해 협업을 결정했다”며 “MZ세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유입될 수 있도록 옛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체험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경동극장을 카페로 되살리는 데 함께한 LG전자가 직접 체험공간을 운영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경동1960점은 스타벅스의 ‘커뮤니티 스토어 5호점’이다. 커뮤니티 스토어는 스타벅스의 이익공유형 매장으로 각각 고유한 목적이 있다.
경동1960점은 지역상생을 목적으로 한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품목당 300원씩을 적립해 경동시장 지역상생 기금으로 조성한다. 이를 통해서 지역 인프라를 개선할 뿐만 아니라 시장 상인들에게는 스타벅스 바리스타 채용 기회도 제공한다.
이다현 스타벅스 경동1960점 점장은 "다른 일반 매장들은 서비스가 잘 이루어지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경동1960점은 상인들과의 관계를 더 많이 생각하고 홍보에도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스타벅스를 통해서 경동시장과 지역이 살아나서 상생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래된 극장을 되살린 스타벅스의 도전은 벌써부터 지역사회에서 큰 관심이다. 경동1960점의 입점이 침체된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 근처에서 폐백집을 운영하는 상인 A씨는 "시장이 노후돼서 지금까지는 주로 노인들의 발길만 이어졌다”며 “스타벅스가 들어왔으니 이제 젊은층이 많이 찾아와 시장도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