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정의당에 따르면 차기 당대표 선거에 △이정미 전 대표 △김윤기 전 부대표 △조성주 전 정책위원회 부의장 △이동영 전 수석대변인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 등 5명 후보가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13일까지 전국 순회 유세와 방송토론 등 선거운동을 진행한다. 투표는 14일부터 시작돼 마지막날인 19일 오후 6시 개표가 이뤄진다.
이번 선거로 선출되는 새 지도부는 당 혁신과 재건을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정의당은 9월17일 정기당대회에서 내년까지 당명 개정과 노선 변경 등 재창당 로드맵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정의당은 창당 10주년을 맞은 현재 최대 위기에 처해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원외 정당인 진보당보다 못한 성적을 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고 최근까지 여진이 이어지며 비례대표 의원 총사퇴 논란을 겪기도 했다.
이번 선거로 당 재건에 성공하고 양당체제 대안으로 ‘제3지대’, ‘제3시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지지율 상승을 위한 뚜렷한 동력이 없고 ‘노회찬·심상정 시대’와 달리 중량감 있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정미 전 대표는 “흔들리는 기반을 다시 다지겠다”면서 ‘힘 있는 리더십’을 앞세우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당내 최대 계파로 꼽히는 민족해방(NL) 계열 인천연합 출신의 당내 주류 인물이다. 2017~2019년 정의당 대표를 한 차례 지냈고 지난 대선 당 경선에서 심상정 의원과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1966년생 57세로 한국외국어대를 2년 다니다 중퇴해 노동운동에 입문했다. 민족해방계열 노동운동에 매진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함께 정계에 발을 디뎠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대변인 등을 지냈고 2011년 통합진보당이 창당된 뒤에도 최고위원, 대변인 등을 거쳤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을 계기로 탈당해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창당에 앞장섰고 2016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이 전 대표는 당대표 출마 선언에서 “정의당 재건과 재창당에 이름 석자를 묻겠다”며 “당을 다시 일으키고 진보 정치의 지평을 넓히는 길에 사력을 다해 변화와 혁신의 성과로 갚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 등 당내 주류 세력이 지난 선거 참패 등 당 위기 상황의 책임과 무관치 않아 인적 쇄신과 새로운 간판 발굴 등 당 혁신 임무를 맡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윤기 전 부대표는 기존 심상정·이정미 체제를 ‘실패한 1기 정의당’으로 규정했다. 김 전 부대표는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과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평가만이 정의당에 남았다”고 비판했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6·1 지방선거 뒤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선거 참패의 원인을 비정규직 노동자와 여성, 장애인, 청년, 성 소수자 등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점에서 찾고 있다”며 “‘검수완박’ 등 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지 않는 의제들에 좌충우돌 끌려다녀 너무나 많은 실점을 했다”고 바라봤다.
류호정 의원도 “시민들이 거대당의 유사품을 구매할 필요가 없어서 정의당이 참패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양당과 다른 점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부대표는 출마 선언에서 이 전 대표를 겨냥해 “민주당에 자신의 전망을 맡겼던 정치인은 새로운 정의당을 이끌 수 없다”며 “자본주의를 극복한다는 분명한 방향과 노선을 갖고 2기 정의당을 열겠다”고 말했다.
또 “기반 없이 중원으로 나갈 수 없고 정의당의 흔들리는 기반을 다시 다지겠다”며 “당의 기반은 일하는 사람들로, 일하는 시민들이 단결권과 협상권을 가지고 노동의 위기를 대비할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전 부대표는 당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인물로 분류된다. 1974년생 49세로 충남대 농학과 재학 시절부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도솔산 월평공원 대규모 아파트 건설 저지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는 등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했고 사회 공공성 강화 민영화 저지 대전공동행동 공동대표, 정의당 대전시당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20년 10월 정의당 동시당직 총선거에 출마해 김종철 전 대표의 러닝메이트로 부대표 자리에 올랐다.
김 전 부대표는 협동하는 진보정당 시대를 만들겠다며 △진보정당 연석회의 추진 △시도당 연석회의 권한 강화 등을 공약했다.
▲ 왼쪽부터 조성주 전 정의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이동영 전 수석대변인,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
다른 후보들도 당 쇄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조성주 전 부의장은 정의당의 쇄신을 위해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야한다며 ‘정의당을 부수고 한국정치를 부숩시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조 전 부의장은 “이제 ‘6411 버스’에서 내릴 시간으로 우리의 비전은 완전히 새롭게 쓰여야 한다”며 “투명인간(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로 출근할 때 우리는 그 일터를 지배하는 경제 권력의 전장으로 용기 있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6411 버스란 노회찬 전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첫차를 타고 일터로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며 언급한 단어로 정의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말로 통한다.
조 전 부의장은 “혁신적 기업가도 정치적 기대를 걸 수 있는 진보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네거티브 규제 △직무급제 도입 △주휴수당 폐지 등 이전에 진보정당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공약을 제시했다. 그는 신진 당원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혜영·류호정 의원이 조 부의장에게 지지를 선언했다.
조 전 부의장은 1978년생 45세로 연세대 천문학과 재학 시절 민주노동당 연세대 학생위원장을 지낸 뒤 최순영·홍희덕 전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국내 최초 청년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설립을 주도하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노동협력관으로 참여했다. 2015년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나서 선전한 경력이 있다.
이동영 전 수석대변인은 ‘제3지대 재창당’을 구호로 내걸었다.
이 전 수석대변인은 “정의당을 넘어 제3지대 재창당은 불평등과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평등사회’, ‘한국적 사민주의’로 나아가는 분명한 선언”이라고 말했다.
특히 다수 시민이 공감하고 보편적 가치로 확장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재정립하겠다고 했다. 이어 젠더폭력, 성별 임금격차, 육아휴직, 돌봄정책 등 다양한 요구를 페미니즘 정치와 전략적으로 연계해 실체적 변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 밖에 △시민최저소득 100만 원 전략사업 △미조직·비정형 노동자를 위한 노동공제회 조직 등 다양한 사회연대전략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전 수석대변인은 1971년생 52세로 경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정치 입문 전에는 보령제약에서 근무했다. 2006년과 2010년 민주노동당 후보로 관악구 구의원을 지냈고 정의당 정책부의장과 서울시당 관악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은 당원의 힘으로 혁신하는 ‘당원대표’를 앞세운다.
정 전 수석대변인은 최근 ‘정의당 비례대표 총사퇴 당원총투표’ 운동을 이끌었던 것과 관련해 “침묵의 회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당원총투표를 대표 발의했고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당원총투표를 당원들의 힘으로 성사시켰다”며 “누구는 분열이라 했지만 창당 이후 아래로부터의 당원들의 직접행동은 모두를 놀라게 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전면 혁신하고 비례대표 중간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 밖에 △노동정치·페미니즘 정치 혁신 △대중정당으로의 당 구조 혁신 △연합정치 실행 등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정의당은 심상정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2.4%의 득표율로 초라하게 선거를 마무리한 뒤 또 다시 전국 단위 선거에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정의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선거구 중 서울·경기·인천·대구·부산·경남·광주 등 7곳에 후보를 냈지만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정의당은 7곳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구에는 후보자조차 내지 못했고 기초단체장 선거구 226곳 가운데는 9곳에 후보를 냈지만 당선자가 없었다.
정의당의 광역·기초 의원 당선자 수는 8명에 그쳐 37명이 당선됐던 2018년과 비교해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정의당은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투표에서 2018년 9.69%를 득표해 비례대표 1명이 서울시의회에 입성했지만 이번에는 지지율이 4.01%로 반토막이 났다. 정의당은 호남 지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 이은 2당 지위를 국민의힘에 빼앗겼다.
정의당 새 지도부는 재창당 쇄신과 함께 최근 정의당 첫 대표를 맡았던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와 박창진 전 부대표의 탈당 등 당내 분위기 수습 난제도 풀어내야 한다.
천 이사는 9월22일 페이스북에 “정의당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현재의 노선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무엇보다도 같은 가치, 다른 의견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적었다. 임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