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활동
2016년 7월7일 국회입성 1,2호 법안으로 정리해고 제한법(근로기준법 개정안), 홍준표 방지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리해고제한법은 정리해고 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하는 내용이고 홍준표 방지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무상급식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2016년 10월23일 정의당 당론으로 법인세 인상 등 6개 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회찬은 “불평등 해소와 사회복지를 위해 조세 개혁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적자 재정을 방치하고 있다. 미르, K스포츠 사태에서 보았듯 기업들의 준조세만 법인세로 거둬들여도 상당한 세수 확보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국가채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국회에서 가결한 뒤 “오늘 우리 국민이 탄 기차는 ‘헬조선’역을 떠나 ‘새로운 대한민국’역으로 출발했다”며 “이제 촛불로 새 사회, 새 나라를 만들어야 할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고 말했다.
2017년 1월12일 중소자영업자와 지역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산업 발전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도시계획 단계에서 대규모 점포 입지를 제한하고 지자체장이 중소유통상업보호지역을 지정해 복합쇼핑몰 등 대규모 점포를 개설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2017년 2월9일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치 개혁을 위해 선거연령 만18세 하향,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등 공직선거법 개정을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또 재벌 총수의 편법적 세습을 막고 총수 지배력 집중을 해체해야 한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조 원에 육박하는 재산을 세습하기 위해 낸 세금이 고작 16억 원이라고 지적했다.
노회찬은 삼성이 인적분할과 '자사주의 마법'으로 수백조 원대 그룹을 통째로 세습하려 한다며 “삼성이 이제 막 하려고 하는 편법적 승계를 저지하고, 다른 재벌들이 이미 저지른 편법적 지배권 확립을 무효화할 법안을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3월1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라 국회에서 5당 원내대표의 초당적 협의기구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노회찬은 “ 대통령이 탄핵된 이 상황에서 국민의 유일한 대표기관이자,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유일한 헌법기관은 국회뿐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국회가 주도적으로 국정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4월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2의 세월호 참사’,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기 위해 ‘한국판 기업살인법’인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사업주 및 경영자가 위험방지의무를 소홀히 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해당 기업에는 전년도 수입액의 10분의1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2017년 5월30일 정의당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임기1년의 원내대표에 재선출됐다. 노회찬은 “정권교체를 넘어 정치교체에 앞장 서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힘이 실릴 수 있도록 적극적 역할을 하고 쓴소리 또한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7년 9월4일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노회찬은 문재인 정부의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2022년에야 완성된다며 이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10월19일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열악한 구치소 생활을 유엔에 인권 침해로 제소하겠다고 한 주장을 반박했다. 노회찬은 박 전 대통령의 거실면적이 10.08㎡로 보통 수용자의 10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일반 수용자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국감장에 2장반의 신문지를 깔고 드러누워 화제가 됐다.
2017년 10월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당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기 위한 부자 증세, 조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공평 과세, 복지사회 전환을 위한 누진증세의 세 가지 방향을 설정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 소득세 최고 세율을 45%로 높이고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 사회복지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18년 1월28일 ‘국민을 위한 헌법 개정안’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당 개헌 시안을 발표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전문에 포함하고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정의 실현’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해야 할 사회상으로 추가 제시했다. 기본권, 평등권, 생명권, 환경권, 사회보장권 등 국민의 권리를 확대하고 경제민주화 조항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 형태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이다’는 항목을 신설했다.
2018년 2월6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을 타파하는 것이 20대 국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초당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 최저임금 인상 로드맵 수립과 식량자급률 목표치 상향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반대 결의안 채택, 개헌 국민투표-지방선거 동시실시 등을 주장했다.
|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018년 2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임시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미국 투표용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운동
노회찬이 추진한 가장 대표적 민생정책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다.
2006년 12월 서민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민주노동당 당사 앞에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운동 선포식을 열고 “2004년 이후 개업한 식당의 경우 신용카드 수수료가 5%나 돼, 카드 사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배가 부르는 것은 신용카드 업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노회찬은 14개 자영업협회와 함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국민운동본부를 꾸려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추진했다. 노회찬은 중소자영업자가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맹점 수수료를 부과받는다고 지적하며 수수료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6월27일 재정경제부에 영세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금융감독원은 8월21일 금융연구원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원가산정 표준안에 따라 영세가맹점 수수료를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결국 2007~2008년 삼성카드, 비씨카드, 신한카드, 롯데카드, KB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이 줄줄이 영세자영업자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에 동참했다.
△삼성X파일 사건
2005년 7월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를 도청한 안기부의 녹음테이프가 공개됐다. 여기에는 삼성그룹이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뇌물을 주고 검찰 간부들에게 500만~1천만 원의 떡값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초 보도한 MBC는 떡값을 받은 검찰 간부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노회찬이 원본을 입수해 최경원·김두희·김상희·김진환·안강민·홍석조·한부환 등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으며 증거자료가 불법도청에 따라 만들어졌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관련자들은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오히려 노회찬은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2007년 5월 검찰에 기소당했다. 2009년 2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으나 12월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011년 5월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놓고 유죄 판결을 내리며 원심을 파기했다. 같은 해 10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받았다. 노회찬은 파기환송심 결과에 불복해 재상고했으나 2013년 2월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노회찬은 이 판결로 국회의원을 상실했다.
다만 명예훼손죄는 인정되지 않았다. 김진환 전 서울지검장이 제기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민사소송에서도 노회찬은 승소했다. 1심은 3천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2심은 공개한 내용이 허위임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고 공익성이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14년 6월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018년 1월10일 서울 종로구 동산방화랑에서 열린 신영복 선생 2주기 전시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0주년'을 찾아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
△비례대표제 도입
2001년 민주노동당 정치개혁특별위헌장을 지내면서 5.16 직후 도입된 전국구 의원제도에 위헌소송을 냈다.
전국구 의원은 1인1표제로 지역구 의원이 얻은 득표수만큼 해당 정당에 의석수를 배분하는 제도다. 후보 지지와 정당 지지가 다를 수 있다는 점과 무소속 후보에 투표하면 정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많았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고 후보와 정당에 따로 투표하는 1인2표제의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2004년 총선 때는 정당투표율 13%로 노회찬 자신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는 기틀을 놓았다.
△선거 이력
2004년 17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 과정에서 TV토론 등에 자주 얼굴을 비치며 민주노동당과 자신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예상 당선권인 5~6번을 넘는 수준인 13.3%를 득표하면서 노회찬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는 진보신당 서울 노원병 후보로 출마했다. 40.1%의 득표율로 선전했으나 43.1%를 득표한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당시 통합민주당 후보였던 김성환 후보가 16.3%를 득표해 단일화에 성공했으면 당선 가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2010년 5대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3.26% 득표율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47.43%), 한명숙 민주당 후보(46.83%)에 이어 3위에 그쳤다. 그러자 반대로 노회찬이 완주하지 않았다면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통합진보당 서울 노원병 후보로 출마했다.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면서 57.21%의 득표율을 거둬 코레일 사장 출신인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39.62%)를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동작을 지역구 정의당 후보로 출마했다.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으나 48.69%의 득표율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49.90%)에 뒤져 낙선했다. 두 사람의 표차이는 928표로 무효표 1403표보다도 적었다. 단일화 시점이 늦었고 김종철 노동당 후보(1.40%)의 득표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2015년 7월 정의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으나 심상정 후보에게 패배했다. 1차 투표에서 노회찬은 43%의 득표율로 31.2%의 심상정 후보를 크게 제쳤으나 결선투표에서 47.5%의 득표율로 52.5%의 심 후보에게 뒤졌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노원병에 출마해 안철수 후보, 이준석 후보 등과 3파전을 이룰 것으로 전망됐으나 당과 지역의 요청에 따라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서 출마했다.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 투표에서 승리했고 선거 결과 51.5%로 강기윤 새누리당 후보(40.2%)를 꺾어 3선 의원이 됐다.
| ▲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10월19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질의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열악한 구치소 생활을 하며 인권탄압 받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반박하며, 서울구치소 수용자 1인당 가용면적(1인당 1.06㎡, 약 0.3평)을 알기 쉽게 신문지 2장 반으로 만들어 직접 누워보고 있다. |
△진보정당 조직활동
진보정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92년 감옥에서 출소한 뒤 진보정당 추진위원회 사무총장에 이어 대표를 지냈다. 1995년 진보정당 추진위원회는 민주정치연합과 통합해 진보정치연합을 출범했다. 노회찬은 진보정치연합 대표를 역임했다.
1997년 진보정치연합에 민주노총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참여한 가운데 대선기구로 조직된 국민승리21의 정책기획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대선 패배 후 국민승리21은 민주노동당 출범의 밑거름이 됐다.
노회찬은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의 초대 부대표를 맡았다. 2000년 16대 총선, 2002년 지방선거,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선대본부장으로 민주노동당 선거를 이끌었다.
민주노동당이 NL과 PD계열로 분열하면서 노회찬은 심상정 비대위원장과 함께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에 올랐다. 진보신당은 총선에서 원내 진입에 실패했지만 정당지지율 2%를 넘겨 정당 등록취소를 피할 수 있었다. 2009년 진보신당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당대표에 선출돼 2010년까지 당을 지휘했다.
2011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을 꾀했으나 대의원대회에서 통합안건이 부결됐다. 그러자 노회찬은 진보신당을 탈당해 새진보정치연대를 만들었고 새진보정치연대와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이 합당해 통합진보당이 출범했다. 노회찬은 통합진보당의 대변인에 선임됐다.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을 계기로 탈당해 진보정의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를 지냈다. 진보정의당은 2013년 7월 당명을 정의당으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