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대표 선출
이정미는 2022년 10월28일 정의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정미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 선거 결선투표에서 전체 8842표 가운데 5426표(63.05%)를 얻어 경쟁자 김윤기 후보를 누르고 당대표에 당선됐다.
앞서 2022년 10월19일 투표에서는 이정미가 과반에 미달하는 49.91%의 득표율에 그쳐 결선투표가 실시됐다.
이정미는 대표 당선 소감에서 “어렵고 고된 일에 언제나 제가 제일 앞줄에 서 있겠다”며 "2년 동안 정의당을 일으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정미는 소외되고 배제된 시민의 곁을 지키며 싸우는 것이 정의당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당 대표로서 첫 행보로 10월29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과 공장사고로 목숨을 잃은 SPC 본사 앞 파리바게뜨 노동조합 농성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이정미는 신당역에서 스토킹 살인 재발 방지를 강조하며 “우리의 진정한 애도는 고인을 살려내지 못한 근무환경과 근무형태를 고쳐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바게뜨 노조 농성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파리바게뜨 불매 운동은 노동자의 삶을 단순한 기계로 여기는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노로 표출된 것”이라며 “파리바게뜨 노조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정미는 2017년 7월부터 2년간 대표직을 수행한 데 이어 두 번째로 정의당 대표를 맡게 됐다.
이정미는 2017년 7월11일 전국동시 당직선거에서 56.0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박원석 후보(43.95%)를 제치고 당대표를 맡은 바 있다.
|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022년 10월28일 당선이 확정된 뒤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인천시장에 출마했으나 존재감 보이지 못하고 낙선
이정미는 2022년 6월1일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인천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정미는 2022년 4월19일 인천시의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 대개조의 역사를 인천에서부터 새롭게 써가겠다”며 “시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인천 최초의 여성 시장이 되겠다”고 출마를 선언했다.
이정미는 핵심 공약으로 △위기에 강한 도시 인천 △돌봄특별도시 인천 △녹색문화도시 인천 등을 제시했다.
이정미는
박남춘 인천시장이 재원 마련이 어려워 포기한 제2인천의료원 설립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다만 경실련은 이정미의 공약에 대해 구체적 실행계획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선거 과정에서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가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정미는 정의당만의 비전과 가치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며 단일화에 선을 그었다.
개표 결과 이정미는 3.17% 득표율을 보이며
유정복,
박남춘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이정미의 특표율은 2020년 총선에서 인천 연수을에 출마해 얻었던 득표율(18.35%)에 훨씬 못 미쳤다. 정의당의 지지율 하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탈락
이정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심상정 의원에게 밀려 최종후보가 되지 못했다.
이정미는 2021년 8월23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제 폐지와 의원내각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양당 중심 ‘낡은 공화국’의 반복은 대통령 제도라는 사생결단식 낡은 권력체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도입하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밝혔다.
이정미는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에 경험한 우리 여성들의 배신감을 잘 알고 있다”며 “사회적 혐오와 차별, 폭력에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금지법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차별금지법 없는 세상은 막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정미는 2021년 10월12일 열린 정의당 대선 후보 결선투표에서 48.88%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쳐 51.12%를 득표한
심상정 의원에게 밀려 탈락했다.
이정미는 경선에서 패배한 뒤 “오늘 낙선했지만 진보정치의 지문을 새로 새기겠다는 의지를 가져가겠다”며 “집권 정의당
심상정정부를 만드는 데 똘똘 뭉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미는 비록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으나 진보정치의 대표 인물인
심상정과의 대결에서 결선투표까지 간 데 이어 결선투표에서도 크지 않은 득표율 차이를 보여 정의당의 미래를 이끌 인물로 각인됐다.
|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018년 12월12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선거제 개혁 합의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단식농성
이정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여 선거제 개편 논의를 이끌어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로 지지율에 비해 의석이 많지 않은 정의당 등 군소정당에 유리하다.
이정미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함께 2018년 12월7일부터 15일까지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였다.
당초 정의당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과 함께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 개편을 연계해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나머지 정당들을 배제한 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에 반발해 이정미는
손학규 대표와 함께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여야 5당 원내대표는 12월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2019년 1월 임시국회에서 선거제도 관련법을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정미는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 태도를 나타내자 12월2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단식이 해제되자마자 다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합의를 지킬 것을 요구했다.
정의당과 바른정당 등의 투쟁 끝에 국회는 2019년 12월27일 본회의를 열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영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자유한국당이 강력히 반발하는 가운데 여야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제출한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개정안에는 기존 국회의원 의석 수(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를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연동률 50%)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2020년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인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비례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제도 도입의 취지가 퇴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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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 협력과 비판
이정미는 정의당 대표를 맡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협력을 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대체로 대북 평화 프로세스에는 협조하면서 고용노동 정책에는 비판을 가했다.
이정미는 2018년 12월24일 상무위원회에서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사용자 의견을 일방적으로 듣고 (개정안을) 수정하려는 것은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넘어 최저임금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같은 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던 그 취지가 무색해지는 여러 가지 노동개혁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의당이 목소리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정미는 “정의당은 촛불정부인 이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는 깊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며 “촛불시민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 안 되고 머뭇거릴 때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제대로 잘 갈 때는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일관된 태도가 바뀐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 이정미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 인사와 사드 배치 등을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월15일 '기업인과의 대화'라는 자리를 마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기업인들을 만난 것도 비판했다.
이정미는 기업인과의 대화에 관해 "시점과 형식에서 오해의 소지가 큰 만남"이라며 "국정농단 핵심 피의자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초대됐는데 이런 식의 스킨십이 계속되면 기업에 '범죄를 저질러도 투자만 많이 하면 괜찮다'는 잘못된 확신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2019년 5월9일에는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노동제도 개악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비판했다.
당 대표 임기를 끝내기 직전인 2019년 7월10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이 확대되고 있다"며 "지금의 민주당은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당내 일부 진보 인사들을 ‘알리바이’ 삼아 진보를 과잉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정미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가격 안정화 실패를 짚으며 다주택자 임대소득 과세 강화와 선분양제 폐지를 주장했다. 또 확장재정을 그린뉴딜과 복지정책에 투입하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정미는 2018년 9월 18~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함께 동행했다. 2005년 민주노동당이 북한 조선사회민주당과의 정당 사이 교류 차원에서 방북한 지 13년 만이었다.
이정미는 방북 후 10월1일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남북 의회의 판문점 선언 동시 비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회 연설 등을 제안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아쉬운 성과
이정미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이정미는 2017년 9월 지방선거 기획단을 출범시키며 지방선거 승리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촛불정국 이후 정의당의 지지율이 높아진 만큼 적지 않은 기대감이 있었다.
선거 결과 정의당에서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26명이 당선됐다. 이 가운데 비례대표는 광역의원 10명, 기초의원 9명이었다. 광역 비례선거구 가운데 정의당이 10% 이상 지지율을 얻은 곳이 많았고, 지지율이 20%대에 도달한 곳도 나왔다. 광역 비례선거 합산 득표율은 8.97%였다.
하지만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에는 정의당이 단 한 명의 후보도 당선시키지 못해 진보정당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의당 후보는 어느 지역에서도 경합조차 하지 못하고 모두 크게 밀렸고,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원외 정당인 녹색당 후보에게도 뒤졌다.
다만 정의당은 지방선거 선전을 바탕으로 지방선거 이후 지지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렸다. 지지율이 6월 말 10.1%를 기록해 처음으로 두 자릿수가 됐고, 8월 초에는 14%까지 올랐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한국당을 제치고 지지율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정의당은 2022년 6월1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두었다.
정의당은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정당 득표율이 4%에 그쳤다. 191명의 출마자 가운데 기초의원 7명, 광역의원 2명이 당선되는 데 그쳤다.
△소수자 대변인
이정미는 여성, 청년,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해왔다.
이정미는 2018년 9월7일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추모 문화제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더 따뜻하게 보듬는 진보 정치가 되어달라는 뜻, 더 크고 강한 정당이 되어달라는 그 뜻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2017년 6월15일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정의당이 여성, 청년 등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을 바꾸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국 정치의 주류를 교체하겠다”며 “여성, 청년, 비정규직의 노동을 대변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당 안의 정당 ‘청년정의당’을 건설하겠다. 청년정치에 더 이상 ‘나중에’는 없다”며 “당으로부터 준독립된 청년정의당에 과감히 자리와 재정을 내주겠다”고 했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국회의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정미는 2017년 7월15일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퀴어문화축제는 국내에 살고 있는 내·외국인 성소수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행사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다”며 “태어날 때부터 성 정체성 때문에 범죄자로 낙인 찍히고 범죄국민으로 낙인 찍히는 이런 사회를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첫발”이라고 주장했다.
이정미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당대표라고 규정했다.
그는 당대표에 선출된 뒤 2017년 7월24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의당이 여성주의 가치를 포기했다는 비판에 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페미니스트 당 대표가 되겠다"며 "성평등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더 강화되어야 할 가치"라고 답했다.
다만 이정미는 자신이 말한 '페미니스트 당 대표'라는 것은 "대중화된 방식으로 여성주의와 여성의 지지를 얻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대중들 사이에 성차별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이 상당한 만큼 정의당이 그런 인식을 제대로 대변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심상정 대선캠프 전략기획본부장
이정미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전략기획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이정미는 심 후보가 사용할 메시지 작성, 여론조사 분석, 타깃 설정, 유세 동선 짜기 등을 맡았다. 심 후보가 기성 정치인과 달리 소신과 일관성 있는 대통령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힘썼다.
이정미는 정치공학에 급급하기보다 정책과 비전을 내세워 진보 지지층을 공략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뒤에는 비슷한 정책 성향을 보인 이재명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정미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문재인 후보의 2중대가 아니다”며 대선 완주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심 후보는 5월9일 대선 결과 6.17%를 득표해 5위에 올랐다. 4위인 유승민 후보(6.76%)와는 19만여 표 차이였다. 광주, 인천, 울산, 대전, 세종, 경기, 충남, 충북, 전남, 전북, 제주 등의 지역에서는 유 후보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심 후보가 역대 진보정당 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율을 얻는 데 이정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3전4기로 국회 진출과 의정활동
이정미는 2번의 낙선과 1번의 중도사퇴 끝에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하지만 비례 순번 15번이라는 낮은 순서에 배정받아 낙선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13.3%를 득표해 8명의 비례 당선자를 냈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서울 영등포갑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으나 4.17%의 저조한 득표율로 전여옥 한나라당 후보(43.75%), 김영주 통합민주당 후보(42.53%)는 물론 한경남 친박연대 후보(8.80%)에게도 뒤진 4위에 그쳤다.
2014년 7월 열린 19대 재보궐 선거 때 수원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중도사퇴했다. 하지만
손학규 후보는 2위로 낙선해 단일화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2016년 20대 총선 때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을 받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정의당은 7.23%를 득표해 4명의 비례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정미는 20대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주로 활동했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이랜드그룹의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 애슐리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강요한 열정페이,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이 만연한 게임업계 노동환경, 대기업 SPC 계열 제빵 브랜드 파리바게뜨의 불법파견 및 임금꺾기 등을 폭로하며 노동환경 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정미는 2018년 후반기 국회 원구성 과정에서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배제되고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로 배치됐다.
이정미는 “애초에 정의당을 더 이상 법안소위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이번 과정의 불합리성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시 생각해달라고 말했으나 소위 구성은 변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활동
대학생 시절 학교 선배에게서 들은 전태일 노동자의 생애가 이정미를 노동운동가의 길로 인도했다.
1988년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영원통신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사용자 측과의 단체교섭 과정에서 해고된 후 앞에 나서서 운동을 이끌기보다는 노조 결성을 위한 교육과 지원에 힘쓰는 방식으로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주로 민족해방(NL)계열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1995년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조직국장을 맡았고, 1998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 몸담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하자 가입해 최고위원, 대변인 등으로 활동했다. 2012년 창당한 통합진보당에도 합류해 대변인과 최고위원 등을 맡았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로 분열하자 천호선 최고위원과 함께 탈당했다. 이어 탈당한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창당했다. 이정미는 1기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