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영 기자 doyoung@businesspost.co.kr2022-09-27 17:05:35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박진 외교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 외교논란 책임에 따라 해임건의안 대상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박 장관은 4선 중진 의원이자 외교 분야 전문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외교 논란이 야기되면서 야당의 공세를 피해가지 못했다.
▲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국회 해임건의안이 27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당론 발의됐다. <연합뉴스>
박 장관은 27일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기로 한 것을 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외교 안보 환경은 너무도 엄중하다”며 “야당이 당리당략으로 국익의 마지노선인 외교마저 정쟁 대상으로 삼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의원 전원 명의로 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기로 의결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순방 외교 논란’에 따른 책임을 묻는 차원이다. 박 장관은 이번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 순방 과정에서 ‘조문 홀대’, ‘48초 회담’ 등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 장관은 이번 윤 대통령의 영국 순방 일정에 동행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먼저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사전조율 성격이 강한 외교장관 회담 이후에 약식회담 형태로 한일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박 장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재적 의원 3분의 1에 해당하는 100명 이상 발의와 과반인 150명 찬성으로 의결된다. 민주당은 현재 169석을 차지하고 있어 29일로 예정된 본회의 표결에서 해임건의안 통과 가능성이 크다.
해임건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어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결시 외교 수장으로서 박 장관이 입을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그동안 외교전문가로 통했는데 외교 실책을 이유로 해임건의안이 발의됐다는 오점을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무부에 몸담았고 4선 국회의원 경력을 거치면서 미국 유력 정치인들과 깊이 교류한 베테랑 외교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외교부 장관에 박 장관을 낙점할 당시 “박 후보자는 2008년 조 바이든 당시 미 상원 외교위원장과 단독 회동을 가질 정도로 대미 외교의 전략통으로 인정받는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해임건의안이 발의됐던 사례들을 돌아보면 박 장관의 사례는 더욱 부각된다. 직무능력 때문에 해임건의안이 발의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1987년 개정 헌법 이후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것은 3번이 전부다. 김대중 정부 때 임동원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 때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박근혜 정부 때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들 사례는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이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미군기지 침투, 만경대 방명록 사건 등 직접적 직무능력과는 무관했다.
더욱이 박 장관은 4선 의원으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교류해온 정치인 출신임에도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아 해임건의안 발의까지 이르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박 장관은 장관 임명 과정부터 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등 순탄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정치인 출신 장관이 상대적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하는 편임에도 박 장관은 이상민 행정안정부 장관과 함께 윤석열 정부에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이 강해된 첫 사례였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들어 경찰국 논란을 일으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주로 해임건의 공세를 펴왔으나 잇딴 외교 논란에 타깃을 바꿨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박 장관 해임건의안 추진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의 국정을 방해하기 위한 ‘발목꺾기’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윤 대통령의 순방에서 국익을 훼손한 주체는 분명히 민주당”이라며 “조문 외교 비하, 대통령의 발언 왜곡, 한미·한일정상회담 폄하 등 모든 외교 일정에 대해 헐뜯기에만 몰두하며 국민 불안을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장관과 관련한 외교 실책 논란이 이번이 처음인 것만은 아니다.
박 장관은 4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꾸린 한미정책협의대표단의 단장을 맡아 미국을 방문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선 이후 10일 만에 홍석현 특사를 미국에 보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을 모두 접견했던 바 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이를 두고 4월1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협의단이 의전상 홀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이 밖에도 7월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에서 외교부가 대법원에 미쓰비시의 자산 매각명령 판단 보류를 요청해달라는 의견서를 내 논란이 크게 일기도 했다.
외교부는 7월26일 전범기업 미쓰비시 압류재산 강제매각을 위한 최종 결정만을 남긴 대법원에 “강제 현금화 이전에 외교적 해결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대법원에서 충분히 고려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 의견서를 수령한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날짜를 특정하지 않은 채 미쓰비시 측의 특허권 특별 현금화 명령 재항고 사건에 대한 심리불속행 결정을 미뤘다.
일각에서 박 장관과 대통령실 사이에 불협화음이 발생해 존재감이 줄고 외교 실책이 이어지고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박 장관이 외교 실책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임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