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소프트뱅크가 기업공개(IPO)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ARM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하며 반도체 설계 자회사 ARM 상장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소프트뱅크와 ARM의 협력 관련한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상장 절차가 추진되면서 삼성전자의 역할은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기업공개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제이슨 차일드 CFO(최고재무책임자)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
로이터는 27일 “ARM이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이슨 차일드 CFO를 선임했다”며 “기업공개 분야에서 갖춘 경험이 상장 준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ARM은 차일드 CFO가 11월2일부터 회사에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글로벌 재무 및 기술 전문가로 아마존 등 여러 기업을 거치며 성장을 이끌어 온 경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르면 내년 초 ARM이 미국 또는 영국증시에 상장하겠다는 계획에 변동이 없다는 점을 발표한 셈이다.
ARM의 새 CFO 선임은 모회사인 소프트뱅크의 마사요시 손(손정의)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이 임박한 상태에서 이뤄져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은 10월 중 한국에서 만나 ARM과 삼성전자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두고 소프트뱅크가 삼성전자에 ARM 매각 여부를 타진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여러 외국언론 및 증권사를 중심으로 고개를 들었다.
손 회장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ARM을 엔비디아에 완전히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고 글로벌 증시 약세와 반도체업황 악화로 ARM이 상장을 추진하기도 불리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ARM이 새 CFO 선임을 계기로 상장 계획에 차질이 없다는 점을 알리면서 이 부회장과 손 회장 사이에 어떤 협력 방안이 논의될 지 예측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일각에서 제기된 대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 퀄컴, 인텔 등 글로벌 대형 반도체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ARM을 공동으로 인수하는 시나리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이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삼성전자가 ARM과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에 쓰이는 첨단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협력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소프트뱅크가 ARM 기업공개를 추진하면서 일부 지분만을 상장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던 만큼 삼성전자가 나머지 지분 가운데 소수만을 확보하려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소프트뱅크가 심각한 재무구조 악화로 ARM 지분을 활용한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만큼 삼성전자에 일부 지분 매각과 관련한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ARM 지분을 소규모로 인수하는 일은 투자 비용 대비 실익이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손 회장은 ARM이 상장하면서 60억 달러(약 86조 원)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인정받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2016년 ARM을 인수한 가격의 2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손 회장이 연초부터 이어진 미국 증시 기술주 약세에도 이런 공격적 목표를 세워두고 있던 만큼 최근 증시 약세가 장기화된 상황에도 ARM 지분 가치를 높게 책정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따라서 삼성전자가 ARM 지분을 소규모로 인수한다고 해도 상당한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소수 지분을 확보해 ARM과 반도체사업에서 기술 협력 등 시너지를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결국 소프트뱅크와 ARM 지분 거래를 논의하려면 손 회장이 합리적 수준의 가격을 제시하거나 ARM의 성장성에 관련해 이 부회장을 충분히 설득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은 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삼성전자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뒤 여러 차례 만나서 사업 협력을 논의하는 등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경영에 본격적으로 복귀해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ARM 지분 확보와 같은 대규모 투자 계획에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손 회장과 이 부회장 사이 사업 협력 논의가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프트뱅크가 삼성전자와 ARM의 협력을 무리하게 추진하며 애플과 퀄컴 등 다른 고객사의 반발을 산다면 오히려 상장에 불리한 약점을 안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는 조사기관 레덱스리서치 분석을 인용해 “ARM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데 성공하려면 주요 고객사들과 모두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