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2022-08-01 17: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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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 에너지 위기와 새 정부의 강한 의지로 국내에서도 원전 비중 확대에 속도가 붙고 있다.
원전이 확대될수록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가 더욱 시급해지지만 우리 정부에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 원전이 확대될수록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가 더욱 시급해 지지만 우리 정부에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사진은 월성원전의 모습. <연합뉴스>
1일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을 방문해 한국수력원자력의 운영현황을 점검하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만큼 원전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에너지 발전 원가가 급등하고 올여름 폭염으로 국내 전력수급 상황이 ‘블랙아웃’ 수준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만큼 전력공급에서 원전 의존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탈원전을 이끌던 유럽에서도 우리와 처지가 비슷하다. 유럽엽합(EU) 국가들에서는 러시아 천연가스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원전 재가동 논의에 힘이 붙고 있다.
원전은 발전 단가가 비교적 저렴한 데다 기후목표 달성의 핵심 요소인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기후 대응에서 후퇴하지 않으면서도 전력난을 해결하는 데는 원전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보인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현재 매체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가 안전하고 기후 친화적인 원전을 퇴출하지 말고 필요하면 2024년까지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며 “원전의 활용은 수천 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배출하지 않는 것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전의 비중 확대는 사용후핵연료 등 방사성폐기물 처리라는 치명적 난제를 안고 있다.
원전을 가동하면 발생하는 고준위성 방사성폐기물은 현재 기술로는 안전하게 만들거나 없앨 수 없는 만큼 반드시 별도의 처리장을 만들어 사실상 영구 봉인해야 한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마련하는 일조차 기술적, 사회적 난관이 만만치 않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확보한 국가는 핀란드가 유일할 정도다.
원전을 두고 ‘화장실 없는 고급 아파트’라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 역시 원전 비중확대와 관련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문제를 향한 국내의 비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월20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개발 로드맵’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번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2060년까지 1조4천억 원을 투자해 한국형 방사성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만든다. 2036년 부지선정을 목표로 연구개발도 병행해 2029년까지 요소기술을 확보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번 로드맵이 차질없이 진행된다 해도 국내 원전의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가 적기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임시저장 시설이 거의 차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저장시설 부족으로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2021년 말을 기준으로 국내 주요 원전의 시설 내 임시저장 시설의 포화율은 대체로 80%을 웃돈다
포화율 62.9%인 신월성 원전의 포화 예상시점이 그나마 2044년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으나 고리, 한빛, 한울 등 원전은 모두 포화율이 70~80%대로 2031~2032년에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월성원전은 포화율 98.8%로 올해 포화가 예상된다.
게다가 핀란드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 사례 등을 짚어 보면 로드맵대로 2060년까지 마무리한다는 게 애초 불가능할 목표일 수도 있다.
핀란드는 에우라요키시 올킬루오토 섬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인 ‘온칼로’를 보유하고 있다.
1983년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마련을 위한 로드맵을 세운 뒤 광범위한 지질학적 조사 등을 거쳐 17년 만인 2000년에 부지를 확정했다. 이후 2015년 사용허가 등 절차를 거쳐 2023년에 첫 사용후핵연료 봉인을 앞두고 있다.
핀란드의 국가적 여건은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 핀란드는 국토 면적이 한국의 3.4배지만 인구는 550만 명 정도로 한국 인구의 10%를 조금 웃돈다. 핀란드가 보유한 원전도 4기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원전 24기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과 비교하면 인구밀도에서만 30배 넘게 차이가 나는 핀란드에서 로드맵 수립 후 실제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가동까지 40년이 걸린 셈이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