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이 '현대오일뱅크 상장 실패'라는 질긴 악연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권 회장은 외부 시장 상황에 발목을 잡히며 세 번째 현대오일뱅크 상장 도전마저도 이뤄내지 못했다. 이에 권 회장은 조선, 에너지, 건설기계 등 현대중공업그룹의 3대 사업 축 구축에 이어 현대오일뱅크의 친환경사업으로 전환에 더욱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 21일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의 숙원으로 여겨지는 현대오일뱅크 상장이 철회됐다. 사진은 권 회장(오른쪽 첫 번째)이 2020년 5월27일 현대오일뱅크 대산2공장을 방문해 안전과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현대오일뱅크> |
21일 현대오일뱅크에 따르면 이날 기업공개(IPO) 철회를 발표하게 된 배경에는 얼어붙은 기업공개 시장 분위기가 가장 컸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코스피 지수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심화와 금리인상, 경기불황 우려 등으로 최근 1년 사이 30% 가까이 하락해 2300선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공모시장 또한 급격히 경직돼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올해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등 대어급 기업공개 주자들이 시장 한파를 극복하지 못하고 상장을 철회했는데 현대오일뱅크도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외부 환경 악화라는 악재를 맞이하며 과거 두 번의 상장 도전을 접었다.
권 회장은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2011년 상장을 이끌었지만 국제유가 하락과 경제위기 등의 영향으로 실적이 하락하면서 상장을 포기했다.
2018년에는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시절 현대오일뱅크 사내이사를 겸직하며 두 번째 상장에도 깊이 관여했다.
당시에는 금융당국의 강화된 회계 감리기준 탓에 전차가 지연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와 상장 전 지분투자(Pre-IPO)를 체결하며 상장을 미뤘다.
지난해부터 추진된 이번 현대오일뱅크 상장의 무산은 최근 고유가 상황과 겹쳐 권 회장에는 더욱 아쉽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현대오일뱅크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좋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업공개 시장 한파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올해 3월 초 14년 만에 처음으로 130달러를 넘어섰고 21일 기준 100달러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정제마진은 최근 10달러 안팎으로 하락했지만 6월 말에는 30달러를 웃돌았다.
권 회장은 현재 지주사 HD현대 대표이사직 외에 유일하게 현대오일뱅크 미등기 임원에 올라있다. 그만큼 권 회장에는 현대오일뱅크 상장이 갖는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권 회장은 2022년 신년사에서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공개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중요한 일이므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권 회장은 미래를 바라본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현대중공업그룹 오너3세인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겸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의 승계 징검다리를 성공적으로 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중간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을 중심으로 한 조선, 현대오일뱅크의 에너지, 두산인프라코어(현대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한 건설기계 등을 3대 핵심사업 축으로 삼고 있다.
세 사업부문은 각각 글로벌 흐름에 발맞춘 친환경, 기술 고도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며 미래가치 키우기에 전념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10월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손동연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가 모두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
정기선 시대’를 맞아 경험 많은 전문경영인 보좌 체제를 구축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세 번째 상장에는 실패했지만 3대 친환경사업(블루수소, 화이트바이오, 친환경 화학소재)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비록 기업공개를 철회하기로 했지만 견조한 실적을 바탕으로 미래사업에 관한 투자를 끊임없이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