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문 기자 question@businesspost.co.kr2022-07-1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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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주요 게임기업들이 기술력을 앞세워 '가상인간'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세계적 흐름이 된 가상인간 개발 경쟁에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제작에 강점을 갖춘 국내 게임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 스마일게이트 한유아, 크래프톤 위니, 애나, 넷마블에프앤씨 리나, 제나.
10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카카오게임즈, 엔씨소프트 등 국내 주요 게임기업들이 올해부터 가상인간 관련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가상인간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제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모습과 목소리를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활용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활동하는 내용에 따라 '버추얼 인플루언서', '디지털 휴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초기에는 기술력을 갖춘 IT기업과 시각효과 개발사 중심으로 가상인간 개발이 진행됐지만 최근에는 연예기획사, 가전회사, 유통기업, 게임기업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기업들이 개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게임기업들은 3D모델링 기술과 스토리텔링 및 캐릭터 제작 노하우 등 가상인간 개발에 필요한 필수 요소를 갖추고 있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이를 통해서 소속 연예인 없이도 광고계와 K-팝 산업 등 매니지먼트사업에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게임기업들은 가상인간 관련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가상인간 제작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게임사의 본업인 게임과 신사업인 메타버스 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서 5월 엔씨소프트 최고연구책임자(CRO)로 합류한 이제희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가상인간 제작 역량이 향후 게임사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만큼 가상인간과 게임 사이의 연관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제희 CRO는 "고도화한 가상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모든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비용과 노력은 절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드라마를 예시로 든다면 출연하는 배우의 역량이 뛰어날수록 작품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높아지고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상인간 기술은 엔씨소프트의 미래 비전이자 중요한 기반 기술이 된다"며 "딥러닝, 물리 시뮬레이션, 컴퓨터 비전, 음성합성, 음성인식, 챗봇 등 다양한 기술을 복합적으로 구성하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과정이 기술적 도전이 될 것이다"고 바라봤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인공지능(AI)센터를 구축한 엔씨소프트는 이 CRO의 영입을 계기로 가상인간 관련 연구에 고삐를 죄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자회사인 넵튠이 가상인간 전문 제작사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과 올해 3월 2차례에 걸쳐 가상인간 아이돌을 육성하는 기업인 딥스튜디오에 81억 원을 투자하고 20%의 지분을 확보했다.
또한 지난해 8월 디지털 K-팝 걸그룹 '이터니티'를 보유하고 있는 펄스나인에도 지분 투자를 단행했으며 11월에는 가상인간 '수아'를 제작한 온마인드를 인수하기도 했다.
넷마블의 계열사인 넷마블에프앤씨 역시 가상인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8월 가상현실 플랫폼 개발과 가상인간 아이돌 매니지먼트사업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뒤 같은 해 12월 딥러닝을 활용한 가상인간 생성기술을 가진 나인엠인터렉티브를 인수했다.
펄어비스도 가상인간 사업과 관련된 해외 전문기술업체에 투자했다.
펄어비스는 지난해 11월 북미 디지털 휴먼 제작사 하이퍼리얼에 300만 달러를 넣었다. 하이퍼리얼은 실제 유명인 외형 스캔을 기반으로 한 사실주의 디지털 아바타 '하이퍼모델'의 제작사다.
가상인간 시장에 진출해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도 있다.
현재 가상인간 부문에서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게임기업으로 스마일게이트를 꼽을 수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2019년 7월 가상인간 '한유아'를 가상현실(VR)게임 '포커스온유'를 통해 공개했다. 한유아는 2021년 8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운영을 시작했고 2022년 4월에는 음원 '아이 라이크 댓(I Like That)'을 발표하고 5월에는 뮤직비디오도 내놨다. 광동 옥수수수염차와 안경 브랜드 '라피스 센시블레'의 광고모델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한유아에 앞서 2018년 7월에는 '세아'라는 다른 가상인간을 내놓기도 했다.
세아는 게임 '에픽세븐'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캐릭터지만 이후 해당 게임과 무관하게 비추얼 인플루언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활동영역은 유튜브나 트위치 등인데 현재 유튜브 구독자 수가 약 7만 명 규모에 이른다.
넷마블도 자회사인 넷마블에프앤씨를 통해 가상인간 부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넷마블에프앤씨가 선보인 가상인간 '리나'는 올해 6월 패션잡지 나일론코리아의 디지털 화보 모델로 발탁됐다. 앞서 3월에는 엔터테인먼트사 써브라임과 전속계약을 맺기도 했다.
넷마블에프앤씨는 가상인간 '제나', '시우' 등도 개발한 경험을 갖고 있다.
가상인간 시장은 게임기업들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게임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개발역량과 노하우를 활용하면 쉽게 가상인간 시장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강욱 크래프톤 딥러닝 본부장은 6월 크래프톤 공식 블로그에 올린 인터뷰에서 "가상인간을 만드는 목표를 고려했을 때 게임사는 다른 비게임사보다 준비가 훨씬 많이 되어 있다"며 "언어, 음성, 영상 딥러닝 기술을 다 잘 다룬다고 해도 여기에 맞는 외형과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와 플랫폼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올해 6월 '애나'라는 가상인간 내놓은 데 이어 7월5일에는 '위니'라는 가상인간을 게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홍보모델로 활용한다고 발표했다.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시장의 전망까지 '블루오션'이라는 점에서 게임기업들이 앞다퉈 가상인간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시장조사 기업 이머전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가상인간 시장규모는 2020년 100억 달러(약 12조3000억 원)에서 2030년 5275억8천만 달러(약 650조8000억 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안정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