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훈(왼쪽) 전 국정원장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직접 전직 국정원장을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면서 정치권에서 향후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를 위해 8년 만에 국정원을 압수수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국정원 내부 자료를 통해 사건이 확대된다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사정정국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7일 오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서훈,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한 사건에 관해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 하겠다”며 “만약 국가가 공무원 피격사건에 자진 월북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거나 북한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분의 인권을 침해했다면 중대한 범죄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6일
서훈 전 국정원장이 2019년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합동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시킨 혐의가 있어 직권남용과 허위 공문서 작성죄로 고발했다. 또
박지원 전 원장은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첩보 보고서를 무단으로 삭제했다며 국정원법 위반과 공용전자기록 손상죄 등으로 고발했다.
이번 고발은 박 전 원장이 물러나고
김규현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 여만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주목을 받는다. 김 원장은 5월27일 제36대 국정원장으로 취임했다.
국정원이 고발하자 대검찰청은 즉각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2008년 이명박 BBK 특검 수사팀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던 ‘
윤석열 사단’의 일원으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5월에 ‘원포인트’ 인사로 임명했다.
국정원이 주장하는 허위 공문서작성과 첩보 보고서 삭제 등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국정원 자료를 검토해야 되는 만큼 검찰은 직접 국정원을 압수수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압수수색은 국정원장의 동의가 필요하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팀장이었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2013년 4월 국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실행하려 했을 때 남재준 국정원장이 메인서버를 압수수색하지 못하게 저지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국정원이 직접 검찰에 사건을 고발한 만큼
김규현 국정원장이 압수수색에 반대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검찰이 국정원 내부 자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국정원에는 최근
박지원 전 원장이 언급한 ‘X파일 자료’를 비롯해 외부로 드러나선 안 되는 자료나 국가 기밀이 많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했던 사례가 흔치 않다.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것은 모두 세 차례에 불과하다. 2005년 국정원 불법도청사건,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사건 등이다. 2005년 사건에서는 임동원 전 원장, 2013년 사건은 원세훈 전 원장의 기소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맡았던 인사들이 기소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윤석열 정부의 사정정국이 시작됐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국정원이 전 국정원장을 고발한 적이 없는데 드디어 국정원이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이다”며 "국가안보실(NSC), 대통령까지 물고 들어가겠다는 의도"라고 바라봤다.
김규현 원장이 취임한 뒤 국정원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임명했고 6월23일 국정원 1급 간부 27명이 전원 대기발령됐다. 6월24일에는 국정원 원훈을 과거 중앙정보부에서 최초로 사용했던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교체하기도 했다.
서훈,
박지원 두 전 원장을 고발조치 한 것도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내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자체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토대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전 원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
서훈,
박지원 전 원장의 혐의를) 1급 간부들을 고강도로 감찰해서 진술을 확보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과거 국정원 직원들이 돌아왔다고 하는데 과거 정치 논리로 했던 짓을 다시하면서 신임 국정원장이 국정원을 ‘걱정원’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과
김규현 원장과의 관계도 재조명된다.
김규현 원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1·2차장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김 원장은 세월호 사건 보고 시각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는데 이 때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았다.
김 원장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2018년 7월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하다 체포됐으나 이틀 뒤 석방됐다. 그 뒤 김 원장은 관련 혐의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원에서 보도자료를 낸 것을 보고 내용을 인지했다”면서도 국정원의 진상조사 결과가 대통령실에 보고됐느냐는 질문에는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무슨 보고를 드렸다는 걸 공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