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은 1970년대 중동 건설의 전설을 되살릴 수 있을까.
올해 상반기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가 부진한 게 사실이지만 하반기 들어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발주 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윤 사장은 중동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해 해외수주 목표 5조6천억 원 달성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17일 중동건설시장 전문매체 MEED와 국토교통부 해외철도정보 등을 살펴보면 현대건설은 최근 바레인 메트로 프로젝트의 사전자격심사(PQ)를 통과했다.
이 사업은 109㎞ 길이의 철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총 프로젝트 규모는 2천억 달러(2조 5천억 원)에 이르며 민관합작투자사업(PPP) 방식으로 모두 4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민관합작투자사업은 민간이 위험부담을 지고 공공인프라 투자와 건설, 유지 및 보수를 맡되 운영을 통해 수익을 얻는 사업방식이다. 정부는 세금 감면과 재정지원을 한다.
2008년 바레인 교통통신부가 제안했지만 금융위기로 지연된 뒤 2018년 타당성 조사가 제출된 뒤 다시 시작됐다. 바레인의 국가 경쟁력을 높여 경제 성장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는 전략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1단계 프로젝트로 29㎞ 복선구간에 20개 역이 지어진다. 이를 두고 현대건설을 포함해 중국항만엔지니어링, 이집트 오라스콤, 프랑스 알스톰 등 11개 업체가 사전자격심사를 통과했다.
바레인 교통통신부는 프로젝트 설계, 구축, 유지관리 등을 위해 전문지식 및 경험이 있는 EPC(설계·조달·시공)사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준 사장은 국내외에서 인정받은 철도 시공능력을 바탕으로 이번 바레인 철도 사업 수주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국토교통부의 2021년 시공능력평가에서 철도분야 1위를 차지했다. 해외에서는 주간사로서 2020년 9월 6700억 원 규모(현대건설 지분율 57.5%, 3840억 원)의 필리핀 남북철도 제1공구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앞서 윤 사장은 지난 14일 중동 지역에서 수주소식을 타전했다.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네옴 컴퍼니에서 발주한 터널공사를 수주했다고 공시했다. 계약금액은 발주처와 경영상 비밀유지 협의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사업연도 매출의 2.5% 이상에 해당한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4500억 원 이상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업은 삼성물산, 그리스계 건설회사 아키로돈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에 성공했다.
네옴시티에 건설되는 28㎞ 길이의 철도 터널 공사인데 네옴시티 교통인프라사업 가운데 하나인 더라인(TheLine)에 포함된다. 더라인은 지상은 보행자를 위한 친환경 공간으로 조성되고 철도, 도로 등 교통 인프라는 지하에 넣는다.
여기에 윤 사장은 네옴시티의 한 축을 담당할 8각형 부유식 도시 옥사곤(OXAGON) 관련 두바(Duba)항 준설 및 안벽 공사 수주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네옴 컴퍼니는 이 사업을 두고 현대건설, 벨기에 데메(DEME)와 얀데눌(Jan De Nul), 네덜란드의 반오드(Van Oord)와 웨스트민스터(Royal Boskalis Westminster) 등에 입찰을 요청했다. 마감일은 오는 7월3일이다.
윤영준 사장은 현대차그룹에서 스마트시티 인프라 구축사업으로 새 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만큼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관련 수주를 확보해 선발대 역할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017년 10월 5천억 달러(600조 원)를 투자해 첨단 미래형 신도시(스마트시티) 네옴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스마트시티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를 적용해 교통, 환경, 주거 등 도시문제를 해결한 똑똑한 도시를 뜻한다.
이는 석유산업의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경제 육성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 비전2030'의 일환이다.
윤 사장은 중동 국가의 발주환경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는 만큼 하반기 해외 수주를 확보해 올해 세운 해외수주 목표 5조6천억 원을 달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건설협회 자료를 살펴보면 현대건설은 이달 15일까지 3억9400만 달러(4800억 원)를 수주했다.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터널공사 수주를 합치면 1조 원이 넘는 해외수주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5일까지 국내 건설사의 해외 건설 수주금액은 106억1294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124억8447억 달러)보다 15% 줄었다. 특히 중동 지역 수주금액이 16억5600만 달러를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40억6443만 달러)보다 59.2% 급감했다.
다만 국제유가가 높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중동 국가의 재정여력이 늘어나면서 하반기에는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원유 수요가 공급보다 높은 상황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중동 산유국들이 2022~2023년 재정수지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사우디라아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올해 투자규모로 전년보다 30% 높은 500억 달러를 제시했고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도 2022~2026년 1270억 달러에 관한 투자 계획을 승인했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고유가의 수혜로 중동 지역의 산유국을 중심으로 재정여력이 늘어 국영석유회사들의 투자 계획이 늘고 있다”며 “현대건설의 국내외 수주 환경이 모두 긍정적이다”고 바라봤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