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회장이 미국 제2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농심> |
[비즈니스포스트] 농심이 미국에 두 번째 공장을 세웠다. 미국 진출 51년 만의 성과다.
한식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국에 농심이라는 생소한 브랜드의 라면을 수출한 지 반 세기 만에 현지 공장을 두 곳이나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농심 스스로 기울여온 노력 덕분이다.
농심은 신춘호 회장의 적극적 의지로 1970년대부터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197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라면을 수출하기 시작해 1994년 농심아메리카를 설립했다.
2005년에는 미국에 제1공장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현지 생산 활동에 들어갔다. 이후 세계 최대 할인점인 월마트와 코스트코 등에 제품을 납품하며 제품성을 폭넓게 인정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 라면시장에 깊숙하게 침투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농심의 국내공장 가동률이 평균 59.7%인데 반해 농심아메리카의 가동률이 89.3%라는 사실은 농심이 미국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농심이 보유한 해외 다른 공장의 가동률도 평균 40.8%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농심은 드디어 미국 제2공장의 가동에 들어갔다. 제2공장 가동을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회장의 감회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4월29일 미국 현지에서 열린 농심 미국 제2공장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일본을 꺾고 미국 라면시장 1위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어느덧 농심이 미국에서 제1의 라면기업을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농심은 미국 제2공장에서 신라면과 신라면블랙, 육개장사발면 등 북미에서 수요가 높은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제2공장의 라면 생산 규모는 연간 3억5천만 개로 제1공장의 물량(연간 5억 개)까지 합하면 농심의 미국 내 연간 라면 생산량은 8억5천만 개까지 늘어난다.
신동원 회장의 눈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라면을 파는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에 맞춰져 있다.
신 회장은 “제2공장을 기반으로 일본을 제치고 미국 라면시장 1위에 오르는 것은 물론 글로벌 1등 꿈을 이뤄낼 수 있도록 전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일본 라면기업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다. 물론 이런 청사진을 구현하려면 미국 내 라면시장에서 입지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농심의 미국 라면시장 점유율은 2020년 기준으로 23.3%다. 일본 토요스이산의 점유율 49.0%와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가야할 길이 여전히 멀다고도 볼 수 있지만 농심을 향한 소비자들의 시각을 살펴보면 미국 내 1위 라면기업이라는 꿈도 영 멀지만은 않아 보인다.
농심의 신라면블랙은 2020년 6월 미국 뉴욕타임스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The best instant noodles)’에 선정된 바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신라면블랙은 농심의 명물인 신라면의 프리미엄 버전”이라며 “매운 국물과 야채 건더기, 맛있는 면의 매력적 조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 11개 라면 가운데 농심의 제품은 4개나 있었다. 신라면블랙을 포함해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친 말)와 신라면 건면, 신라면 사발면 등이다.
농심은 사실 미국에 첫 공장을 세운 초기만 하더라도 미국 현지 라면시장에서 2% 안팎의 점유율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일본 라면기업들이 일찌감치 다져 놓은 시장에 균열을 내는 것은 무리로 보였을 정도다.
하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하며 저가 제품 공략에 치중한 일본기업과 달리 고급화 전략을 내세운 덕분에 시장에서 영향력을 차츰 늘려갈 수 있었다.
세계적 식품회사들만 가능하다고 여겨진 ‘월마트 전 매장 입점’이라는 기록을 농심이 한국 식품기업 최초로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전략 덕분이다.
신동원 회장은 미국 제2공장 준공을 계기로 앞으로 미국 라면시장 공략에 고삐를 죄는 한편 멕시코 등 인근 지역으로 수출 확대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농심의 글로벌 기업 도약은
신동원 회장의 아버지인 농심의 창업자 신춘호 회장의 유훈과 같은 목표이기도 하다.
신춘호 회장은 작고하기 전인 2020년 12월 마지막 업무지시에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며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며 “현재 진행 중인 미국 제2공장과 중국 청도 신공장 설립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해 가동을 시작하고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