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 |
최고경영자(CEO)들은 늘 소통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로 소통을 잘 한다고 인정받는 최고경영자가 드문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수직적 조직문화가 소통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항상 거론된다.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이 꺼내든 취임 일성도 그 어렵다는 소통인데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롯데그룹의 조직문화에 변화를 일으킬 촉매제가 될지 주목된다.
13일
김상현 부회장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그동안 여러 해외기업에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수평적 소통문화를 익힌 전문경영인으로 여겨진다.
김 부회장은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JP모건에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이후 글로벌 소비재기업인 P&G에서만 30년 정도 일했다.
2016년부터 홈플러스 최고경영자를 2년3개월 정도 맡아 한국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홍콩계 유통기업인 DFI리테일그룹에서 3년 반가량 일했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해외기업에서 보낸 만큼 김 부회장에게 소통은 자연스럽게 체득된 습관이나 다름없다.
그가 롯데그룹 유통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영어이름) 샘 김(Sam Kim)이나
김상현님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몸에 베어 있는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부회장은 실제로 함께 일했던 임직원들과 온라인에서 꾸준히 소통한다.
김 부회장은 비즈니스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링크드인에 올라오는 동료 혹은 부하 직원들의 소식에 자주 댓글을 단다.
최근에는 홈플러스 대표 시절, P&G 근무 시절 일했던 직원들이 새 회사에 이직하거나 사옥을 이전했다고 알린 글에 “축하한다. 2022년에 행운을 빈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데 행운을 빈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앞서 DFI리테일그룹의 새 매장 진출 등을 알린 글 등에는 팀과 팀원들의 고생을 격려하거나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동료를 위로하기도 하는 등 격의 없는 모습도 보여줬다.
김 부회장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롯데그룹 유통군에 소통의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김 부회장의 글들을 보면 그가 선언한 소통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언제든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서슴없이 저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며 조만간 CEO와 직원의 대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뜻도 보였다.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
김상현식 소통’이 롯데그룹 유통군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바라본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수직적 문화를 좀처럼 깨뜨리지 못해 변화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소통이 강화되면 보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김 부회장이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고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통산업은 고객과 접점을 놓쳐서는 안 되는 대표적 산업이다. 유행과 소비심리, 소비습관 등의 변화에 민감해야만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해 사업에 즉각 반영할 수 있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고객과 만날 기회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중간관리자나 사무직으로 전환되면 고객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듣기보다 보고서 형태로 받아보는 일이 잦아진다.
김 부회장이 염려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김 부회장은 롯데그룹 유통군 총괄대표로 유통 계열사 20곳가량을 아울러야 할 뿐만 아니라 롯데쇼핑 대표이사로서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온 등 다양한 사업부도 챙겨야 한다.
김 부회장은 7일 롯데그룹 유통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하면서 인터뷰 형식의 영상을 통해 “제가 고객에게 제일 멀리 있는 사람인데 언제든지 직원들에게 들을 준비가 돼 있다”며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고객의 필요를 먼저 발굴해 보답하는 것이 우리가 이기는 방법이다”고 말했다.
고객에게 한 발짝 더 가가기기 위한 수단으로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열테니 영업 현장에서 고객과 직접 만나는 직원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김 부회장이 출근 이후 일주일 동안 현장경영을 적극적으로 해온 것과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의지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김 부회장은 업무 시작 이후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주요 지점을 방문했다. 앞으로도 집무실이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중심으로 서울 주요 거점을 수시로 방문해 고객과 접점을 늘려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