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부가 중국 최대 반도체기업 칭화유니그룹을 사실상 국유화한 뒤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목표에 더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칭화유니그룹이 중국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미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의 전면에 등장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고객사를 지켜내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20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칭화유니그룹은 최근 투자회사인 JAC캐피털과 와이즈로드캐피털 컨소시엄에서 전략적 투자를 제안받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투자 규모는 600억 위안(약 11조1700억 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두 회사가 모두 중국정부 산하 국부펀드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칭화유니그룹 국유화 절차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칭화유니그룹은 7월 자금난으로 파산을 신청한 뒤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있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중국정부 측의 자금 지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로이터에 따르면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회장은 중국 국부펀드 컨소시엄의 투자 제안이 회사 기업가치를 저평가한 수준에 그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칭화유니그룹 경영진은 곧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자오 회장이 현재 파산 사태를 이끈 장본인이라고 지적하며 투자 논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중국정부가 미국과 한국 등을 상대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 뛰어들며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칭화유니그룹 국유화는 결국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JAC캐피털과 와이즈로드캐피털은 그동안 중국정부의 반도체산업 육성 계획에 맞춰 적극적으로 글로벌 반도체기업에 투자를 이어가며 반도체기술 확보에 주력해 왔다.
자동차용 반도체기업 NXP와 대만 반도체 테스트기업 ASE테크놀로지가 투자대상에 포함됐고 최근에는 와이즈로드캐피털이 한국 매그나칩반도체 인수도 시도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칭화대학이 51%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인데 반도체사업 특성상 대규모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쉽지 않아 경쟁력 확보에 고전해 왔다.
중국정부가 반도체공장 건설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방식으로 지원을 이어오긴 했지만 칭화유니그룹은 결국 2천억 위안(약 37조2400억 원)에 이르는 빚더미에 앉은 상태로 파산을 신청했다.
반면 중국 국부펀드가 칭화유니그룹에 투자해 대주주에 오른다면 중국정부에서 연구개발 및 인력 확보에 필요한 자금도 직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 반도체시장 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칭화유니그룹의 국유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칭화유니그룹은 낸드플래시 전문기업 YMTC와 시스템반도체 설계기업 유니삭 등을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 성장 잠재력을 주목받고 있다.
YMTC는 이른 시일에 128단 3D낸드 양산에 나서는 등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기술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유니삭은 3분기 글로벌 모바일프로세서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를 제쳤다.
이처럼 기술력 및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칭화유니그룹에 중국정부의 막강한 시설투자 및 연구개발 지원이 본격화된다면 성장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반도체산업을 민감하게 견제하고 있는 미국정부도 중국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응해 마이크론과 인텔, 퀄컴 등 자국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지원을 더 확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 칭화유니그룹 국유화가 미국과 중국 사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 더욱 불을 붙이는 촉매제로 작용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반도체시장 입지 축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각 나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반도체공장을 운영하거나 투자 확대 계획을 잡아두고 있다.
▲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 내정자(왼쪽)와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자국 기업에 지원을 집중에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으려 한다면 자연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한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중국은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궁극적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고객사에 공급하는 반도체 물량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급성장 가능성애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당분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다만 칭화유니그룹을 포함한 중국 반도체기업들이 미국정부의 견제로 다른 반도체기업에 투자해 기술을 확보하거나 첨단 반도체장비를 사들이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은 한국 반도체기업에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정부는 반도체산업에서 금전적 이익이 아닌 완전한 자급체제 구축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두고 있다”며 “그러나 칭화유니그룹 등을 대상으로 미국정부의 견제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