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하이트진로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경영권 승계작업을 차질없이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공정위 제재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하이트진로그룹은 가뜩이나 일감 몰아주기로 2018년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뒤 행정소송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번에도 사실상 같은 혐의로 제재를 받으면서 오너일가의 도덕성에 흠집이 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그룹은 향후 오너 단독경영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데 이때 잡음을 최소화하려면 오너일가는 경영능력뿐 아니라 도덕성 등 측면에서도 높은 신뢰를 확보해 둬야 한다.
박 회장이 2014년 하이트진로그룹의 핵심 사업회사인 하이트진로 대표이사에서 내려온 뒤 회사는 오너일가와 전문경영인이 공동으로 이끌고 있다.
공정위는 하이트진로그룹의 계열사인 서영이앤티가 하이트진로와 삼광글라스 사이 맥주캔 납품계약에 끼어들어 통행세를 지급받는 등 2008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고 파악하고 2018년 2월 하이트진로와 서영이앤티, 삼광글라스에 각각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이트진로그룹은 이에 불복하고 2020년 3월부터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박 회장의 이번 혐의가 상당히 무겁다고 보고 있어 하이트진로그룹은 당분간 공정위 제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박 회장은 납품기업인 연암과 송정이 계열회사로 미편입됐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지정자료 제출 때 누락을 결정했고 대우화학 등 3곳 납품기업은 계열사 직원들도 친족회사로 인지하고 있을 정도로 하이트진로와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다”며 “대기업집단 지정자료 허위제출을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현저하거나 상당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14일 박 회장이 2017년과 2018년에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친족이 지분 100%를 지닌 납품기업 5곳과 친족 7명을 고의로 누락한 혐의로 고발조치했다.
이와 관련해 화이트진로는 "공정위 조사 과정 중 해당 계열사들은 모두 동일인과 무관하고 독립경영을 하고 있으며 고의적 은닉이나 특별한 경제적 이득을 의도하거나 취한 바 없음을 소명했으나 충분히 반영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며 "앞으로 진행될 검찰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충분히 소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경영권 승계에서 장남인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과 차남인 박재홍 하이트진로 부사장에게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넘겨주는 작업을 아직 남겨두고 있다.
하이트진로그룹은 지난해 12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박태영 부사장과 박재홍 전무가 각각 사장과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박태영 사장이 국내사업을, 박재홍 부사장이 해외사업을 나눠 맡는 쪽으로 승계의 가닥을 잡았다.
하이트진로홀딩스는 하이트진로그룹의 지주회사다.
박문덕 회장이 2021년 5월1일을 기준으로 지분(보통주 기준) 28.90%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고 서영이앤티가 지분 27.16%를 쥐고 2대주주에 올라있다.
박태영 사장과 박재홍 부사장은 현재는 서영이앤티의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서영이앤티는 맥주냉각기를 제조해 파는 회사다. 박태영 사장이 지분 58.44%를 보유하고 있으며 차남인 박재홍 부사장이 21.62%, 박문덕 회장이 14.69%, 박문덕 회장의 형인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이 5.16%를 들고 있다.
박태영 사장이 박 회장의 하이트진로홀딩스 보유지분을 물려받으려면 막대한 상속세나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서영이앤티가 박 회장의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인수해 하이트진로홀딩스의 1대주주로 올라서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식음료업계는 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