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이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 확대전략에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DB하이텍은 반도체 고객사가 많은 중국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SK하이닉스 역시 최근 DB하이텍과 전문분야가 비슷한 파운드리 자회사를 통해 중국 반도체시장을 공략하고 있어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14일 DB하이텍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9359억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81억 원을 중국에서 거뒀다.
DB하이텍의 지역별 매출 증가율도 중국이 두드러진다.
2020년 DB하이텍의 중국 매출은 전년 대비 27.6% 늘어나 주요 사업지역 8곳 가운데 2번째로 증가폭이 컸다.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대만(41.1%)의 매출 규모는 856억 원에 그쳤다.
이처럼 DB하이텍에서 중국시장의 존재감이 큰 이유는 그만큼 파운드리기업에 필요한 시스템반도체 일감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자급자족을 뼈대로 하는 ‘반도체굴기’를 추진함에 따라 현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의 규모도 커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10년까지만 해도 세계 팹리스시장에서 중국기업의 비중은 5% 수준에 불과했는데 2019년에는 15%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DB하이텍은 중국기업에 전력반도체, 이미지센서 등 여러 종류의 시스템반도체를 공급하며 실적을 키우고 있다.
다만 중국 반도체시장이 성장하면서 파운드리업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선도기업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의 파운드리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7년 파운드리전문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를 세운 뒤 국내 파운드리공장에 있던 반도체장비를 중국 우시 신공장으로 옮기고 있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올해 말까지 장비 이전을 마무리한 뒤 본격적으로 반도체 생산 확대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SK하이닉스의 반도체사업은 메모리반도체 중심으로 이뤄졌고 파운드리를 비롯한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작년 SK하이닉스시스템IC 매출은 7030억 원으로 SK하이닉스 전체의 2%가량에 그쳤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최근에는 파운드리사업 확대 의사를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13일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에서 정부 주관으로 열린 ‘K-반도체벨트 전략 보고대회’에 참석해 "현재와 비교해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DB하이텍은 SK하이닉스와 달리 기존 반도체 생산시설의 효율화 이외에 증설 등 새로운 투자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DB하이텍이 향후 생산규모 면에서 SK하이닉스시스템IC에 추월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DB하이텍과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공통적으로 8인치(200mm) 웨이퍼 기반 파운드리공장을 운영한다. 웨이퍼 기준 생산능력은 DB하이텍이 월 13만 장,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8만5천 장~10만 장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추산된다.
두 기업의 전문분야가 비슷하다는 점도 '골리앗' SK하이닉스에 맞서야 하는 DB하이텍을 긴장하도록 하는 요인이다. SK하이닉스시스템IC 역시 DB하이텍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센서 등 아날로그반도체를 주로 생산한다.
DB하이텍의 고객사 쪽에서 보면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성장함에 따라 위탁생산을 맡길 선택지가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2배’ 투자가 DB하이텍의 중국사업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중국의 기존 파운드리기업들은 대형고객사를 위주로 반도체 일감을 다량 확보하며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DB하이텍과 SK하이닉스시스템IC 같은 중견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소규모 팹리스의 반도체 수주를 노려야 한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파운드리시장 점유율은 대만 TSMC 61%, 중국 SMIC 16%, 중국 화홍 8%, 대만 UMC 7%,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3% 등으로 추정됐다. 상위 5개 기업이 시장 95%를 점유하고 있다.
DB하이텍 관계자는 "그동안 아날로그반도체 분야에서 쌓아온 기술력과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고려해 봤을 때 SK하이닉스의 증설이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