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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Who] 구광모는 LG 미래를 어디에서 찾고 있나, 이제 보여줄 때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2020-11-24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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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회장이 LG그룹 총수에 오른 지도 이제 곧 4년차에 접어든다.

구 회장은 다른 대그룹 오너와 다르게 경영전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으로 정중동의 경영활동을 보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구 회장은 앞으로 언제 그만의 색을 보여줄까?

구광모 취임 3년 정중동 ‘선택과 집중’

구광모 회장이 만들어가고 있는 LG그룹의 색깔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구 회장은 LG그룹을 기존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경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LG그룹은 변화에 보수적이리는 말을 들어왔다.

사업재편만 봐도 그렇다. 성장 가능성을 면밀하게 따져 투자할 것은 투자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렸다.

LG디스플레이는 LCD 관련 사업을 재편하기 시작했고 LG화학도 LCD편광판 사업에서 손을 뗐다. LG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하고 LG유플러스의 전자결제 사업을 매각하기도 했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올레드와 관련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LG화학은 전기차배터리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법인을 세우기도 했다.

이렇듯 구 회장이 총수에 오른 뒤 지난 2년 반 동안 보여준 행보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LG그룹이 앞으로 어디로 가겠구나’ 하는 색깔이 선명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구 회장이 LG그룹의 비전을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설명하며 방점을 찍었던 것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정도다.

구 회장이 경영전면에서 그룹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다 보니 실제로 LG그룹 지주사인 LG에서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아쉬움을 표시하는 말도 나온다.

구 회장이 LG그룹에 변화의 바람은 몰고 왔지만 다른 대그룹 오너와 달리 비교적 조용한 탐색의 시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구광모, LG그룹 가풍 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가

구 회장은 LG그룹을 이끈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잘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일까?

먼저 가풍부터 살펴볼 수 있다.

LG그룹은 대대로 총수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오너 스타일의 집안이었다.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부터 시작해 구자경, 구본무 회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화’를 강조하며 조용하게 사업을 육성해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하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불도저경영으로 유명하지만 LG그룹의 역대 회장들은 모두 어떤 타이틀을 붙이기 힘들다 할 정도로 경영전면에 거창하게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구 회장 역시 같은 환경에서 자랐으니 이런 가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구 회장의 성격도 한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평소에 그룹 회장보다 지주회사 LG의 대표라는 직함을 선호한다고 한다. 임직원들에게도 ‘구 회장’보다는 ‘구 대표’라고 불러 달라 했다고 한다.

권위적 모습을 타파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구 회장 스스로 그룹을 이끈다는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구 회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수에 올랐다.

구 회장은 1978년 태어나 LG그룹 회장에 올랐을 때의 나이가 만40세에 불과했다. 10대 재벌 가운데 구 회장보다 어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과거를 살펴보면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29살 때, 현대중공업그룹의 정몽준 회장이 36살 때, 그리고 현대백화점그룹의 정지선 회장이 35살 때 회사를 물려받은 사례들이 있기도 하지만 만40세의 4대그룹 회장은 찾아보기 힘든 사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행동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정지선 회장도 현대백화점그룹 총수에 오른 뒤 한동안 아주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정 회장이 그룹의 방향타를 잡은 뒤 10년 정도 지날 때까지도 그를 규정하는 한 마디가 ‘베일 속 조용한 행보’였을 정도다.

물론 구 회장이 아직 그룹 총수로서 비전을 제시하기에는 이르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총수의 발언이 그룹의 운명을 좌우하는 무거운 무게를 지닌 만큼 충분한 시간을 거쳐 비전을 숙성한 뒤 비로소 천명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 그래도 LG그룹 총수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

하지만 격변하는 기업환경 속에서 LG그룹에게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LG그룹은 과거만 해도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재벌로 꼽혔다. 삼성그룹과 현대그룹, 그리고 LG그룹을 얘기하면 한국의 재벌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상은 옛날 같지 않다. 재계순위만 봐도 삼성과 현대차, SK의 뒤를 잇는 그룹이 LG그룹이다. LG그룹이 재계 순위 3위 타이틀을 빼앗긴 게 2005년인데 1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SK그룹을 앞서지 못했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만 보면 상황이 녹록치 않다.

LG전자 제품은 예전부터 내구성 좋은 가전의 대명사로 불리며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현재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3년 동안 연간 영업이익으로만 평균 46조 원을 거뒀다. 하지만 LG전자는 같은 기간에 영업이익을 연평균 2조5천억 원 내는 데 그쳤다. LG전자가 18년 이상 벌어야 할 돈을 삼성전자가 단 1년 만에 번다는 얘기다.

그만큼 체급이 벌어졌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른 사업들이 잘 나간다고 보기도 힘들다. LG유플러스는 이동통신사업자 가운데 만년 3위라는 꼬리표를 못 떼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생존의 문제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실적이 안 좋다.

LG화학의 배터리사업이 그나마 희망적 사업인데 이제 막 흑자를 내는 시기에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온전한 결실을 맺기까지는 한참 기다려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4차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등 기업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총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구 회장이 LG그룹에 높이 들 깃발에 대한 갈증도 내부에서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구광모는 LG그룹 미래를 어디에서 찾고 있나

구 회장이 기치를 들고자 하는 LG그룹의 미래를 보려면 구 회장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 행보를 살펴보면 미래를 위해 기술 연구개발을 강조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 중심에는 LG사이언스파크와 LG테크놀로지벤처스가 있다.

LG사이언스파크는 LG그룹 연구개발의 심장인 곳으로 서울 마곡에 있다. 구 회장이 총수에 오른 뒤 처음 방문했던 곳이 LG사이언스파크였고 이후에도 꾸준히 방문할 정도로 애정이 각별한 곳이다.

구 회장이 LG사이언스파크에 쏟는 애정은 LG그룹의 2019년 시무식을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었던 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선대 회장들은 일반적으로 그룹 본사인 LG트윈타워에서 시무식을 열어왔다. 구광모 회장이 이런 관례를 깨고 LG사이언스파크에서 시무식을 연 것은 그만의 색깔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행보라고도 볼 수 있다.

앞으로 LG그룹 경영에 4차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 개발과 이에 따른 경쟁력 강화를 가장 중요한 화두로 두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 회장은 실제로 LG사이언스파크를 놓고 “LG 미래 책임질 연구개발의 메카”라고 꾸준히 강조해왔다.

그는 2019년 2월에 “대표이사로 부임하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사이언스파크이고 가장 자주 방문한 곳도 R&D 현장이었다”며 “이는 최고의 LG를 위해 기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믿음과 최고의 R&D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2020년 5월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라고 볼 수 있다”며 “사이언스파크만의 과감한 도전의 문화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구 회장의 첫 해외 출장지도 연구개발 역량 강화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구 회장이 해외 첫 출장지로 꼽았던 곳은 스타트업의 성지라고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LG테크놀로지벤처스였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CNS 등 5개 계열사가 모두 5천억 원가량을 출자해 만든 기업벤처캐피탈(CVC)로 글로벌 스타트업의 기술 개발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2018년 5월 처음 설립됐다.

구 회장은 당시 간판도 안 달았던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방문해 회사의 운영 현황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살펴봤다. 어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는지 직접 챙겼다.

벤처정신을 통해 LG그룹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강화해 강한 LG를 만들어내는 것, 구 회장이 그리고 있는 LG그룹의 미래가 아닐까?

구 회장이 강조하는 연구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고객’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신년사와 임직원 회의 등을 통해 꾸준하게 ‘고객’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강조하고 있다.

구 회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LG가 쌓아온 전통을 계승·발전하는 동시에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변화할 부분과 나아갈 방향을 수없이 고민해 봤지만 결국 그 답은 '고객'에 있었다”며 “지금이 바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라는 기본 정신을 다시 깨우고 더욱 발전시킬 때”라고 말했다.

2020년 신년사에서도 “모든 것을 고객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짚었다.

인화만을 얘기하던 LG그룹이 구광모 회장체제로 변화한 이후 계열사마다 ‘고객’을 얘기하는 회사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때 결국 구 회장이 강조하는 연구개발의 지향점이 고객에게 있고 실제로 LG그룹이 그 방향을 향해 가는 쪽으로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그래도 결단도 필요하다, LG그룹에서 대규모 인수합병도 나올까

구 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도 만만찮다.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 벤처정신 무장 등 모두 좋은 말이지만 내부에서 오랜 시간 갈고닦아 성과를 만들기에는 만만찮은 일이다. 부족한 부분을 외부에서 찾아 메우는 인수합병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LG그룹은 인수합병 공격적으로 나선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

2015년 이후로 보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모두 여러 분야에 통 큰 베팅을 여러 차례 했다.

삼성그룹은 10조 원을 들여 하만을 인수했고 현대차도 미국 자율주행기업인 앱티브와 손잡고 합작법인을 만드는 데 2조 원 넘게 썼다.

LG그룹도 전장분야를 키우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차량용 헤드램프기업 ZKW를 1조450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수합병에 소극적 모습을 보여왔던 탓인지 몰라도 합병 후 통합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LG그룹은 인수합병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LG전자는 1995년 미국의 가전기업인 제니스를 인수했지만 거듭된 경영 악화로 미국법원에 기업회생계획을 냈을 정도로 제니스의 경영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은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다. LG그룹의 제니스 인수는 여러 경영학 교과서에서 대표적 외국기업 인수합병의 실패사례로 실릴 정도다.

최근 들어 구 회장이 구 회장이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시선이 증권업계에서 늘어나고 있다. LG그룹이 새 성장동력을 키우는 일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실탄은 충분하다. 지주사인 LG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현금과 현금성자산을 2조 원 가까이 늘렸다.

구 회장은 LG사이언스파크와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자주 찾았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로봇 등 4차산업혁명에 각광받을 산업분야에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각별하게 공을 들였다. 회장 4년차가 되는 2021년에는 대규모 인수합병을 보여줄까. [채널Who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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