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총선 뒤 군산 조선소를 재가동하라는 정치권의 거센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현대중공업은 아직 일감이 넉넉하지 않아 주력 조선소인 울산 조선소도 일부 도크를 쉬도록 하고 있다. 일감 부족 문제를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하기가 어려운 만큼 군산 조선소를 다시 가동하는 데도 난항이 예상된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군산시 지역구에서 승리한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재가동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신 당선인은 앞서 15일 밤 11시경 당선이 확정되자 “젊은이들이 정 붙이고 살 수 있는 군산을 만드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의 재가동부터 즉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게 군산 조선소의 재가동은 아주 민감한 문제다.
정치권의 군산 조선소 재가동 추진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대중공업 처지에는 여건이 아직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산 조선소 재가동 문제의 핵심은 일감이다.
일반적으로 배를 건조하는 과정의 70%를 협력사가 담당하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군산 조선소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사내 협력사들에 군산 조선소 이전을 설득해야 한다. 협력사들의 안정적 조업을 담보할 수 있을 만큼의 일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대중공업이 군산 조선소를 준공했던 2008년은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가 275억 달러치 선박을 수주했던 호황기였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3.5~4년치 일감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조선업황은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는 2019년 146억 달러치 선박을 수주했다. 2018년보다 10% 줄어든 수치다. 심지어 2020년 들어서는 1분기 말 기준으로 9억 달러치 선박만을 수주했을 뿐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수주잔량은 1.5년치가 채 안 된다. 조선사의 안정적 조업을 담보하는 기준인 2년치 일감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조선사가 일감이 없는 상태에서 도크의 가동을 유지한다면 이는 고정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자연히 도크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은 울산 조선소에 10개, 군산 조선소에 1개 도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군산 조선소의 1개를 포함해 3개 도크의 조업을 중단해 놓고 있다.
바꿔 말하면 현대중공업의 군산 조선소 재가동은 울산조선소의 휴업 중인 도크 2개를 먼저 가동한 뒤에도 일감이 남아돌 때나 가능하다는 뜻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2000년에서 2010년은 현대중공업이 단독으로 최근의 그룹 조선3사 합계치보다 많은 선박을 수주했을 만큼 조선업황이 좋았던 시기”라며 “그 때와 같은 호황은 이제 다시 오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의 모회사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수주잔고가 넉넉하지 않은 만큼 군산조선소의 가동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원래 도크를 8개 보유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5개 도크만 가동하고 있다. 나머지 3개 도크는 플로팅 도크(물 위에 띄워 선박을 해상에서 건조하는 도크)로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모두 매각됐다.
조선업계의 계약관행도 군산 조선소 재가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선박 건조계약은 선주사가 조선소를 방문해 현지 실사를 한 뒤 선박을 건조할 도크를 직접 지명해 체결된다.
선주사로서는 3년에 가까운 가동중단으로 건조능력을 확실하게 보장하기 어려운 군산 조선소에서 선박이 건조되는 것이 꺼려질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은 2017년 7월 일감 부족을 들어 군산 조선소의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그러나 재가동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설비 보수를 위한 인력을 남겨두고 충분한 일감만 있다면 가동할 수 있는 상태로 군산 조선소를 유지하고 있다.
신영대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 군산조선소 재가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공공 선박발주 일감을 확보하고 ‘군산형 일자리’를 통해 군산 조선소의 수익성을 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런 노력이 군산조선소를 다시 가동할 만큼의 일감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열쇠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