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뒤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 통과 이후 두 회사의 주가하락으로 큰 손해를 입고 있다.
국민연금의 손실액은 앞으로 더 늘어날 수도 있어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국민연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 찬성 뒤 6천억 평가손실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통과되고 최근 두 회사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국민연금이 6천억 원에 가까운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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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를 마치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은 각각 1856만1301주(11.88%), 679만7871주(5.04%)에 이른다.
두 회사는 지난달 17일 주주총회를 열고 합병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전날 삼성물산 주가는 6만9300원, 제일모직 주가는 19만4천 원이었다.
그러나 두 회사가 합병안을 통과시킨 뒤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7일 삼성물산 주가는 전날보다 5.25% 급락한 5만2300원, 제일모직 주가는 4.66% 하락한 15만35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는 외국인을 중심으로 합병안 통과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3일부터 7일까지 한 주 동안 삼성물산 주식을 570억 원어치, 제일모직 주식은 250억 원어치나 순매도했다. 삼성물산은 외국인 주간 순매도 종목 1위, 제일모직은 7위에 올랐다.
특히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 6일 지분 7.12% 가운데 4.95%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가 하락세가 더 가파르게 진행됐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삼성물산에서 3155억 원, 제일모직에서 2753억 원 등 모두 5908억 원의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나머지 지분에 대해서도 매도에 나설 경우 두 회사 주가는 더 하락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의 평가손실 규모도 더 커지게 된다.
◆ 국민연금 책임론에 불거지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으로 각각 5만7234원과 15만6493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해도 주식매수청구권행사를 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하락뿐 아니라 KCC의 주가하락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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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
국민연금은 KCC의 지분 12.19%를 보유한 2대주주다. KCC는 삼성물산이 보유하던 자사주 899만주(5.76%)를 1주당 7만5천 원, 모두 6743억 원에 사들여 삼성그룹 백기사로 나섰다.
그 결과 KCC는 삼성물산 주식에서 2천억 원의 평가손실을 보고 있고 KCC 주가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의 평가손실이 커질수록 국민연금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나올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작업이 목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ISS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대부분 삼성물산 합병반대를 권고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SK와 SKC&C 합병 때와 달리 의결권자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합병에 찬성하는 결정을 내렸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이번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에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미심쩍은 절차를 통해 삼성물산 합병 건에 대해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고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 계속 침묵하고 있으며 경제개혁연대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는 사유를 들어 거부했다”고 밝혔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이 매수청구권 가격과 시가가 5% 이상 나는데 행사를 안 하면 배임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