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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
삼성물산 주주총회가 다가오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표대결 전망은 갈수록 짙은 안갯속에 갇혀있다.
법원이 엘리엇매니지먼트에서 제기한 2건의 가처분 소송을 모두 기각하면서 삼성물산이 합병을 둘러싼 공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합병 표대결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에게 반대 의결권 행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높아지고 있다.
◆ 국민연금 자문기관, "합병비율 문제있다" 지적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 합병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의견을 국민연금에 전달한 것으로 8일 알려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는 공식 자문기관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합병비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합병절차는 문제없지만 삼성물산의 주식가치가 저평가된 시점에서 합병이 추진됐다고 본 것이다. 이런 판단은 지난 3일 세계 최대 자문기관인 ISS의 의견과 맥을 같이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제일모직이 6월30일 발표한 배당확대 방안 등 주주친화정책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의견은 삼성물산 합병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도 이에 앞서 합병안에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오는 17일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이 이뤄질 예정인데,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결정이 합병성사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국민연금은 자문기관의 의견을 참고만 할 뿐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달 SK와 SKC&C의 합병안에 대해 찬성을 권고했으나 국민연금은 오히려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국내외 주요 자문기관들이 잇달아 반대의견을 낸 만큼 국민연금이 합병찬반의 어느 편에 서든 명분과 논리를 세우기가 쉽지 않게 됐다.
◆ 삼성그룹 경영진, 국민연금에 적극 구애
삼성그룹 경영진들은 주총일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합병효과를 강조하며 국민연금 등 우호세력 확보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반면 엘리엇매니지먼트도 연일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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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 |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은 8일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 뒤 “국민연금도 장기투자자로서 합병결과가 시너지를 내고 삼성물산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가질 수 있느냐를 보고 고민하는 것 같다”며 국민연금이 찬성편에 설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도 “국민연금 자체의 펀드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높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는 만큼 잘 판단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국민연금이 국내 대부분 기업의 대주주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미국계 헤지펀드 손을 드는 것이 국가경제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법원은 삼성물산이 KCC에 자사주를 매각한 사안과 관련해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서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은 KCC가 보유한 지분을 표대결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됐지만 표대결의 전망은 여전히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삼성물산 지분 2.05%를 보유한 주요주주인 일성신약만 해도 합병비율이 바뀌지 않을 경우 합병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윤석근 일성신약 대표는 “합병비율이 바뀌지 않으면 주총에서 합병 반대쪽에 설 수밖에 없다”며 삼성물산에 주주친화적 조치를 촉구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도 이날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삼성그룹이 제시한 주주친화정책을 '의미 없는 일'로 깎아내렸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주주들은 이미 지난해 28%의 배당성향으로 배당을 받았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보유지분이 희석돼 막대한 손해를 보고 배당을 받는 것인데 합병 뒤 회사가 30% 배당성향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삼성물산 주주의 입장에서 이전보다 퇴보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또 삼성그룹의 주주 달래기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