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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의 오너들은 왜 사과에 서툴까

오대석 기자 ods@businesspost.co.kr 2015-06-23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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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재벌의 오너들은 왜 사과에 서툴까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다목적홀에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과는 리더의 언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와 뇌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공동저서 ‘쿨하게 사과하라’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오너들은 ‘사과의 기술’이 서툴다.

회사로 볼 때 사과는 단순히 도덕적 문제를 떠나 조직의 위기관리와 직결된다.

사과를 잘못할 경우 회사의 이미지가 훼손될 뿐 아니라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기로 몰릴 수 있다. 물론 진정성있는 사과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꿔놓을 수 있다.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인 램 차란은 저서 ‘노하우’에서 “여론에 신경 쓴다고 주가가 올라가지 않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무너지거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 사과에 인색하고 서툰 한국의 오너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관리소홀과 관련해 직접 사과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3분 동안 사과문을 읽었고 질의응답은 받지 않았다.


사과의 시점도 아쉽다는 말이 나왔다.

이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을 거느리고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상 삼성서울병원의 허술한 관리에 좀 더 일찍 사과했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비판의 강도는 훨씬 낮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재벌의 오너들은 대개 사과에 서툴다. 사과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내용이 없는 사과로 일을 더 키우기도 한다. 전문경영인이 사과를 대신하도록 하는 일도 빈번하다.

지난해 말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대한항공이 대표적 사례다.

조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를 문제삼아 항공기를 되돌려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조 부사장은 초기에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처음에 조 부사장을 편드는 듯한 발언으로 불에 기름을 끼얹고 말았다.

결국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뒤늦게 “자식관리를 잘못했다”며 “제 잘못”이라고 사과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역부족이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제2롯데월드 안전문제와 관련해 사과의 시점을 놓쳐 논란만 키웠고 제2롯데월드는 한동안 위기를 맞았다.

제2롯데월드는 지난해 10월 임시개장 이후 바닥과 천장균열, 영화관 진동 발생, 아쿠아리움 누수, 공사장 노동자 추락사, 출입문 이탈 등 사고가 잇따랐다.

그러나 신 회장은 올해 1월 와서야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롯데그룹 직속으로 제2롯데월드 안전 컨트롤타워를 발족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오너들이 이렇게 사과에 서툰 것은 제왕적으로 군림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권한은 무한대인데 비해 책임지지 않는 관행에서 성장하면서 외부와 소통하는 일에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사과에 서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오너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직언을 할 수 있는 재벌 내부의 견제장치도 없다.

이 때문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다음에야 마지못해 사과하고 화를 키우는 일이 잦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 재벌의 오너들은 왜 사과에 서툴까  
▲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 즉각적 사과,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도


외국에서 오너가 솔직한 사과와 적극적 대처로 논란을 초기에 종결짓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미디어재벌’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은 2011년 영국 주간지 뉴스오브더월드의 휴대폰 해킹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폐간하고 적극적 사과로 논란의 확대를 막았다.

머독은 휴대폰 해킹을 통해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폭로해 온 이 매체를 폐간하고 친필 사인이 담긴 사과광고를 내보냈다. 머독은 이 광고에서 “미안합니다. 그동안 잘못했던 것들을 바로 잡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일부에서 지나친 대응이었다는 말도 나왔지만 머독은 이를 통해 논란이 커지는 것을 막고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다.

오너가 아닌 CEO지만 제임스 버크 존슨앤존슨 CEO가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에서 보여준 발빠른 사과와 대처도 위기를 기회로 만든 모범사례로 꼽힌다.

버크는 1982년 시카고의 한 정신병자가 미국 존슨앤존슨의 진통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주입해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즉각 사과했다. 회사 입장에서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버크는 “우리 제품을 절대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내며 미국 전역의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했다. 버크는 타이레놀 포장도 외부에서 주입이 불가능하게 바꿨다.

이런 노력으로 타이레놀은 다시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물론 국내에도 오너의 빠르고 적극적인 사과로 위기를 조기에 수습한 사례가 있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은 지난해 2월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건이 터지자 사고발생 아홉 시간만인 새벽 6시에 현장에 나타나 진두지휘했다. 이 회장은 유가족들에게 적극적 조치와 피해보상을 위한 사재출연을 약속했다.

이 회장은 “이번 사고로 고귀한 생명을 잃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와 가족에게도 엎드려 사죄한다”며 “부상자들이 하루 빨리 쾌유할 수 있도록 코오롱그룹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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